종교개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취리히의 교회들을 둘러보는 시간. 절로 두 손이 모이는 경건한 예배당에서 잠시 마음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알고보면 흥미진진!
흥미로운 스위스 교회 이야기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의 집
종탑은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 외에도 중요한 장소를 포함하고 있다. 성 피터 교회에 작은 창문이 있는 곳. 이곳이 파수꾼의 집이다. 그의 업무는 15분마다 밖을 내다보는 일이었는데 덕분에 목조건물이 많은 중세 시대에 한 번쯤은 겪는 대화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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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 일어나다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파는 것을 계기로 유럽 전역에 가톨릭교를 반대하는 개혁이 일어났다. 15세기 체코의 얀 후스를 시작으로 16세기 독일의 마틴 루터, 스위스의 율리히 츠빙글리, 프랑스의 칼뱅으로 이어진 운동이 종교개혁이다.
오직 성경으로 구원받으리라
순수파 율리히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시행하자 시민들은 사치스럽고 부패한 가톨릭교를 심판하고자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 교황의 절대권을 박탈하고 수집품이던 성화와 성상을 금지했다. 교회에 성인들의 유해를 없애고 수도회를 해산시키며 성직자들의 결혼을 허락했다. 교회의 권위는 교황이 아니라 성경이다. 그의 사상을 따른 청교도는 영국까지 확산하였고 영국의 청교도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의 교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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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이후의 삶
먹고 살기 힘들어진 스위스
개혁에 성공한 츠빙글리는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는 용병과 순교자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여관업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프스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산맥을 넘는 여행자를 상대로 여관업을 하고 있었고, 대상은 직업군인이 대부분이었다. 먹고 살길이 없어지자 산악지대 사람들은 츠빙글리의 적인 가톨릭 국가 오스트리아와 손잡아 역으로 쳐들어왔고 이때 츠빙글리는 전사한다.
근검절약의 이면
옛날부터 어렵게 살았던 스위스는 돈에 집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후에는 엄격한 금욕 생활과 근검절약을 동반해야 했다. 돈은 모으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강요당하다 보니 몰래 명품을 사고 상표를 떼서 입고 고가의 차를 사도 앰블럼을 떼고 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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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 스위스의 시작
17세기 유럽은 구교(가톨릭)와 신교(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 분열로 30년 전쟁이 일어났고, 각국에 용병으로 나가 있던 스위스 군인들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그러자 스위스는 처음으로 중립을 주장하며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독립국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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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방문해야 할 취리히 3대 교회
종교개혁의 시작이 된 곳
그로스뮌스터
그로스뮌스터는 12세기에 무려 100년이 넘게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었다. 성인의 무덤을 모신 성소로 시작했으나 스위스 종교개혁의 발상지가 되면서 개신교로 역할이 바뀌었다. 종교개혁가 율리히 츠빙글리가 탑 내 사무실에서 종교개혁을 구상하고 이견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를 두고 종교개혁의 어머니 교회라 불린다. 성당 벽면에는 그의 전신조각과 청동 문에 설교하는 츠빙글리의 부조가 있다.
출처 www.myswitzerland.com/en/experiences/grossmuenster/
샤갈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프라우뮌스터
독일과 스위스, 동유럽 일부에 해당하던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가 딸을 위해 세운 수도원이자 성당이었다. 이후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변경되었다. 오래된 성 유물을 잘 보관해 지하실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마르크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1978년 9m의 긴 창에 5개의 성경 이야기를 주제로 만든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왼쪽부터 예언자 엘리야의 승천, 야곱의 싸움과 천국의 꿈, 예수의 생애, 최후의 날 트럼펫을 부는 천사. 백성들의 고통을 내려다보는 모세와 계명 이야기다.
출처 www.facebook.com/fraumuenster/photos/a.258842540932238/258850054264820/?type=3&theater
출처 www.myswitzerland.com/en/experiences/fraumuenster-church/
취리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취리히 성 피터 교회
성 베드로 성당에서 종교개혁 후 교회로 변경되었다. 그 증거로 설교단 위 성경구절과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이름을 적어놓았는데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첨탑 외벽에는 취리히의 초대 시장이었던 루돌프브룬의 묘와 기념비가 있다.
출처 www.zuerich.com/en/visit/attractions/st-peter
취리히 3대 교회 모아보기
- 그로스뮌스터관광명소취리히(취리히 구시가지)
- 프라우뮌스터관광명소취리히(취리히 구시가지)
- 취리히 성 피터 교회관광명소취리히(취리히 구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