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여행에는 책이 함께 했다. 친구들은 책을 가져가느니 옷 한 벌 더 넣어가라고 하지만, 왠지 책 한 권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다.
물론 다 읽고 오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는 햇살 가리개로 요긴하게 썼고, 프라하의 한 성벽에서는 깔고 앉아 엉덩이를 보호했다.
지금은 그런 여행의 설렘을 느낄 수 없지만, 책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진부하지만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을까. 책 속 거리와 풍경,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행의 순간들을 마음껏 그려본다.
이 달콤한 상상을 혼자만 하긴 아까워, 여행 이야기가 생생히 담긴 에세이 도서 5권을 소개한다. 이 책들의 단점이라면 상상하다 못해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는 정도. (나 혼자만 여행병에 걸릴 순 없다..😏)
📚 책 선정 기준
✔ 챕터가 나뉘어 있어 틈틈이 읽기 좋다.
✔ 여행지에서의 이야기가 담긴 산문집으로 여행지도 느끼고, 작가의 생각도 엿볼 수 있어 좋다.
✔ 술술 읽힌다. (내 기준)
#이화열 작가의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 지은이 : 이화열 / 272쪽, 440g
・ 파리 '앙리지누 가'의 풍경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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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그립다면 이 책 어때요?
제목부터 낭만적이 이 에세이는 파리의 사람과 풍경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덤덤히 쓰인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파리의 거리가 자연스레 그려져 '앙리지누(Henri Ginoux) 가'가 대체 어딘지 지도를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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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과 파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뜻밖의 세상, 온갖 우연으로 가득 찬 삶, 이런 요소들이 갖는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사과 파이를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어이없이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스타일로 묵묵하게 파이를 굽는 것뿐이다. 파이를 오븐에 밀어 넣는다. (268쪽)
・ 지은이 : 김하나 / 268쪽, 348g
・ 유연한 사고방식이 가져다준 일상에 대한 글. 하고 싶은 것들에만 집중했던 남미에서의 생활기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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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꿈꿨다면 이 책 어때요?
제목은 자기계발서 같지만, 작가의 소박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피식피식 웃게 되는 여행 에세이다. 휴대폰 하나 없이 떠난 남미에서의 경험을, 소중한 이들과 나누고 싶어 기록해 남겨두었다고. 떠나기 쉽지 않은 남미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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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춤추는 공연에서 커다란 DSLR을 들고 우직하게 무대를 찍고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백이면 백 한국 사람이다. 그는 해상도 높은 사진들을 증거물로 제시하며 공연이 참 신나고 좋았다고 말하겠지. 미쳐서 춤추라고 하는 공연 속에 그는 발 한 번 까딱이지 않았음에도. 그건 진실일까?
나라면, 어떤 풍광에, 어떤 음악에, 어떤 감정에 푸욱 뛰어들었다 나와, 아무런 그럴듯한 증거물도 없이 그냥 맥주 한 잔 놓고 침을 튀기며 말하겠다. 그 느낌이 어땠는지,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197쪽)
・ 지은이 : 하정우 / 296쪽, 348g
・ 서울을 걸어서 누비며 출근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골목과 한강 변을 걸으며 스스로를 다잡은 기억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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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 가고 싶다면 이 책 어때요?
'걷기'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고, 하와이에 대한 내용은 몇 챕터 되지 않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왜인지 하와이에 가고 싶어진다. 걷기 위해 하와이에 간다는 하정우를 따라 하와이 트레킹 코스를 미리 짜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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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중략)...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無)’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25쪽)
・ 지은이 : 김연수 / 264쪽, 364g
・ 몽골,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태국, 일본, 이란, 실크로드 등은 물론 순천, 부산, 대구 등 국내 도시까지. 여행의 기억과 깨달음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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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비'가 궁금했다면 이 책 어때요?
김연수 작가의 다른 작품 <청춘의 문장들>, <소설가의 일>도 좋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여행 산문집만 한 것이 없다. 각 챕터도 아주 짧아 쉽게 읽힌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특히 좋았다는 태국 끄라비 에피소드를 읽으면, 청춘을 찾으러 당장 떠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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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연상시키는 해변과 클라이머가 매달린 암벽, 반쯤 누워서 담배를 피우며 마시는 얼음 맥주, 그게 청춘이 아니라면 뭐가 청춘일까? (65쪽)
기억은 과거에 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 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흐릿하게 혹은 그 반대로. 그제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바라보느냐,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삶은 잘 짜인 픽션이다. (235쪽)
#김영하 작가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지은이 : 김영하 / 293쪽, 381g
・ 아내와 함께 떠난 시칠리아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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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로 떠나고 싶다면 이 책 어때요?
김영하 작가의 베스트셀러인 <여행의 이유>가 여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작가가 실제로 어떻게 여행을 다녔는지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시칠리아를 먼저 경험해볼 수 있는 책. (현재 절판이지만 4월 말 개정판 <오래 준비해온 대답>으로 출간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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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힘든 일을 당하여 낙심할 때마다, 혹은 당황하여 우리 중 누군가가 허둥댈 때마다 그 멋쟁이 사장의 느긋한 대사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탈리아어 원어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이 된다.
"Senora, prego. E 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대한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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