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사진첩을 들춰보다 스무 살 배낭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후지산 사진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이때 비행기에서만 봤던 후지산을 직접 가서 본 것도 어느새 수 번째이다. 문득 나 자신에게 궁금해졌다. 시즈오카의 무엇에 이끌려서 난 시즈오카로 갔을까?
친절한 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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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이 지겨워졌어
한적한 곳으로 향하자
첫 일본 여행지였던 도쿄를 시작으로 볼거리가 많은 도시를 찾아다니며 수도 없이 다닌 일본 여행. 하나라도 놓칠까 분 단위로 쪼개 빠듯하게 움직이며 유명 관광지에서 인증샷을 찍기 일쑤였던 어느 날,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곳들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남들 다 가는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를 떠나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곳을 찾아 조용히 여행을 하고 싶었다. 자연을 벗 삼아 천천히 걷고 싶었고,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렇게 소도시가 궁금해졌다.
친절한 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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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 어때?
직항이 있고 교통이 편리한 곳
사실, 소도시 여행은 교통이 걱정이었다. 멀리 돌아가지 않고 어렵지 않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인천에서 직항이 있는 시즈오카가 눈에 들어왔다. 시내까지 들어가는 것도 리무진 연결이 잘 되어있어 편하고, 근교 도시까지도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어 뚜벅이 여행자들도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시즈오카였다. 여기에 다양한 교통패스와 다양한 테마의 투어 상품까지 골고루 마련되어 있으니 나에게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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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시즈오카에 갔어?
후지산 때문이야
“후지산 봤어요?” 시즈오카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는 첫인사였다. 그만큼 시즈오카를 가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후지산을 보기 위함일 거다. 나 역시 시즈오카에서 보고 싶은 건 후지산이 1순위였으니까. 하지만 날씨가 큰 변수였다. 오죽하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까. 날씨가 맑아도 구름옷을 자주 입는 후지산 때문에 행여 구름옷이 걷힐까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적도 있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하얀 구름 띠를 두른 후지산이 살짝 웃어 보인 날엔 심장이 바운스 춤을 추기도 했다. 좀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후지산을 보기 위해 그다음 여행을 기약하기도 했다. 때문에 시즈오카를 몇 번씩 또 가냐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시 찾게 되는 시즈오카는 내겐 애증의 여행지가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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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보다 화려한 밤이 기다리고 있어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곳
소도시 여행을 한다고 해도 내가 포기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쇼핑과 나이트 라이프. 그리고 이런 내게 작은 시내는 다소 '노잼' 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고후쿠쵸 거리에는 아기자기한 상점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고, 유명 편집숍과 쇼핑센터들이 옹기종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자기함이 묻어나는 낮과는 다르게 화려하게 변신하는 시즈오카의 밤이 찾아왔다. 오뎅거리로 유명한 아오바 요코초에서 1차를 하고,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찾는 골든 요코초에 들러 나마비루를 기울이다 보면 내가 이들과 함께 현지인이 된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취기를 안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돈키호테에서 느긋하게 쇼핑을 즐겼다. 이래서 시즈오카 여행을 갈 때는 지갑을 든든하게 채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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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젠지에서의 하룻밤
여행은 역시 힐링이 필수지
시즈오카 시내에서 1시간 반 거리, 고즈넉함이 숨쉬는 작은 온천마을 슈젠지를 찾아 료칸에서의 하루를 지내 보기로 했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강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녹차 한 잔에 마음부터 편안함이 찾아왔고, 저절로 명상의 시간에 잠겼다. 미인온천에 들어가 있으니 피곤했던 몸에도 휴식이 찾아왔다. 저녁은 료칸의 꽃인 가이세키. 시즈오카산 제철 음식으로 만든 요리와 벚꽃이 활짝핀 것 같은 사쿠라 에비 튀김이 눈과 입까지 즐겁게 만들어주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밤에 대나무 평상에 누워있으니 별이 우수수 떨어진다. 잠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채 오롯이 마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소도시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 힐링이 이런거구나. 그래, 이래서 내가 시즈오카에 왔지.
생각해보면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시즈오카 여행이었다.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감동은 컸던 후지산,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었던 시내, 그리고 오롯이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줬던 잔잔한 소도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다채로운 매력 때문에 자꾸만 발길이 가는 곳이다.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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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떠나고 싶은 블로거
블로그 ‘친절한 유박사’ 닉네임으로 익숙한 그녀, 일본 소도시 여행의 매력에 빠지다. 혼자, 때로는 아이와 함께 매월 일본 여행을 다니며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blog.naver.com/minnie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