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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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지 않은 미식 여행 나 홀로, 나고야

오랜만에 떠나는 나 홀로 일본 여행. 도시를 선택하는 것부터 설레었다.

가장 가까워 부담 없는 후쿠오카를 생각하다가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를 보고는 삿포로에 마음을 빼앗겼고, 교토의 최신 호텔에 '혹' 했다가 도쿄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 '훅'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 선택한 곳은 미식의 도시, 나고야! 결국 나고야의 맛있는 음식이 하루키와 삿포로를 이긴 꼴로, 한국인 관광객이 그나마 덜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적당한 여유와 반가움. 맛있는 음식과 뜻밖의 발견이 있었던 나고야를 소개한다.

맛의 도시 나고야
나고야 메시 ?

나에게 나고야를 추천해준 사람은 이름 모를 일본인 아주머니였다. 규슈 여행 중 호텔 대욕탕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데, 민망하게도 맞은 편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그렇다면 나고야에 꼭 들러보라고 했다. 그것도 꽤 진심을 다해.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나고야의 향토 음식을 일컫는 '나고야 메시'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일본 내에서도 미식 도시로 손꼽히는 나고야. 가장 대표적인 장어덮밥 '히츠마부시'부터, 붉은 된장소스를 곁들인 돈카츠까지. 나고야에는 나를 배부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저만 몰랐나요?
줄 서지 않고 히츠마부시 먹는 방법

나고야의 히츠마부시는 정말 정말 맛있지만, 약간은 두렵기도 하다. 과거 두 차례 나고야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매번 기나긴 줄을 서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했는데, 구글 지도를 보다 보니 이전에는 몰랐던 예약 기능이 있다. 희망하는 날짜와 시간, 인원 시간만 입력하면 예약 끝! 이 기능. 나만 몰랐던 건가?!

일본어 까막눈도 문제없다. 홈페이지 예약은 어렵고, 전화 예약은 겁이 났는데 구글 예약은 최소한의 정보만을 필요로해 굉장히 편리했다. 단, 모든 가게가 예약 기능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니 확인은 필수! 가령, 내가 방문한 '빈초'는 구글 지도에 '예약하기' 탭이 있지만 또 다른 히츠마부시 전문점인 '마루야'는 지원하지 않았다.

  • 히츠마부시 나고야 빈초 에스카 점
    히츠마부시 나고야 빈초 에스카 점
    음식점 · 나고야(나고야 역 주변)
맛도 좋고 속도 편한
따뜻한 한 끼 식사

음식 타령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불행히도 여행 전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맥주와 튀김처럼 자극적인 음식은 가급적 피했는데 라멘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호텔 주변을 걷다가 발견한 라멘집. 보통 일본 라멘집 하면 퇴근길 아저씨들이 후루룩~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 외관부터 새하얗고 혼자 가기에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유자가 들어간 라멘! 자판기로 주문하면 직원이 면의 경도를 묻는데 이때 '미디움'이라고 답했더니 다소 당황하는 눈치였다. (보통은 하드 혹은 소프트 중 선택하는 것 같다.)

메뉴판 설명에는 '해산물을 이용한 육수'라고 쓰여 있었지만, 내 입에는 '닭한마리' 육수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워낙 담백한 데다가 중간중간 유자가 '아삭'하고 씹혀서, 느끼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맛.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 츄카소바 우에다 세멘 점
    츄카소바 우에다 세멘 점
    음식점 · 나고야(사카에 & 오스)

이번 여행 중 음식을 고르는 또 다른 기준은 '집에서 잘 못 먹는 음식'이었다. 1인 생활을 하는 나는 평소 생선을 먹을 일이 거의 없다.

'스즈나미'는 나고야에만 해도 여러 개의 지점이 있을 정도로 인기인 생선구이 맛집이다. 나는 본점에 들러 '은대구구이 정식'을 먹었는데 이번 나고야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입에서 살살 녹는 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앙증맞은 그릇에 나온 콩조림은 희한하게도 밤 맛이 났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그것도 가족 단위의 손님들 사이에서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다 보니, 나 또한 고향에서 집밥을 먹고 있는 듯한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 스즈나미 본점
    스즈나미 본점
    음식점 · 나고야(사카에 & 오스)
술이 술~술~ 넘어가는
나고야 혼술 타임 🍶

음식을 신경 써서 먹었더니 다행히도 배가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술 타임'이다!

나는 나고야의 명물 중에서도 특히 나고야표 된장 소스를 좋아한다. 사카에 인근에 이 된장 소스가 맛있는 오뎅 바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이름은 '카모시야'. 맥주와 사케, 하이볼은 물론 와인까지 판매하고 있다.

인기 메뉴 표시가 되어 있는 아보카도를 보자마자 '오늘은 아보카도와 와인이다!'하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솔드아웃. 아쉬운 대로 된장소스에 절인 곤약과 야채, 계란 등을 골라 이곳의 특제 하이볼과 함께 먹었다.

이때도 분명 '배가 아플지도 모르니 조심해야지' 했는데,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나고야식 안주를 먹다 보니 술이 술~술~ 들어가 술을 추가했다 🤤

  • 카모시야
    카모시야
    음식점 · 나고야(사카에 & 오스)

여행 중 와인도 빼놓을 수 없었다. 나고야역에 있는 'JR 나고야 다카시마야'를 구경하다 허기가 져서, 가까운 곳을 찾다가 알게 된 '코콘'. 입구 쪽에 있는 1~2개의 테이블을 제외하면 일렬로 긴 테이블이 펼쳐져 있는 바(Bar)로 맥주, 칵테일, 와인, 사케 등 다양한 주류를 판매하고 있다.

이번에도 고민하지 않고 '베스트', '추천' 등의 표시가 되어있는 메뉴를 골랐다. 그리하여 먹게 된 것은 일본산 글라스 와인국물이 있는 알리오 올리오 라멘! 처음 맛본 일본 와인은 산뜻하니 기분이 좋았고, 얇은 소면에 양념이 밴 알리오 올리오는 한 그릇 더 먹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이렇게 먹다 보니 또 술이 술~술~ 들어가, 아삭한 야채 스틱과 와인을 추가했다🍷

  • 코콘 메이에키 점
    코콘 메이에키 점
    음식점 · 나고야(나고야 역 주변)
든든하게 시작하는 나고야의 아침
커피 & 모닝 세트

나고야를 여행한다면 호텔 조식보다는 카페에서의 아침 식사를 추천한다. 나고야의 또 다른 명물인 '오구라 토스트(식빵 위에 팥을 올린 토스트)' 등 베이커리 류는 물론, 스파게티나 함박스테이크, 카레 라이스 등 식사류를 판매하는 옛 다방 스타일의 '킷사텐'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 때는 기왕이면 프랜차이즈가 아닌 곳에 가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간판이 예뻐서 들린 작은 카페는 동네 주민들로 만석이었고,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선 카페들도 많아 늦잠을 잔 것이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도 적당하고, 너른 좌석도 보유하고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사카에 인근에 있는 '큐오엘 커피'. 약간의 금액만 추가하면 음료에 토스트와 샐러드를 주는 모닝 세트를 먹을 수 있다. 토스트의 옵션 또한 다양한데 나는 라떼와 어울리는 시나몬을 골랐다.

원두와 커피 관련 용품도 판매하고 있어서 커피를 좋아한다면 가벼운 쇼핑을 하기에도 좋다. 나는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골라 핸드드립용으로 분쇄해 가져왔다. 무엇보다 이번에 들린 나고야의 카페에서 하나같이 현지 음악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주로 클래식이나 팝송이 나왔다.) 마스터의 취향이 담긴 현지 음악이 흘러나와 무척이나 반가웠다. 찾아보니 꽤 오래전에 발표된 노래인데, 경쾌한 멜로디가 나고야에서의 아침을 더 씩씩하게 만들어줬다.

  • 큐 오 엘 커피
    큐 오 엘 커피
    음식점 · 나고야(사카에 & 오스)
☕ 이 밖의 나고야 추천 카페
"오사카 부럽지 않아요!"
쇼핑은 나고야에서

유명 관광지 위주로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여행 중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지 못했다. 그나마 한국어가 많이 들렸던 곳은 역시나 '돈키호테'. 그래도 오사카나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이 들려준 이야기처럼 재고가 없는 극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요즘 가장 힙하다는 '캐피탈', '슈프림', '빔스' 같은 의류 매장도 꽤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제부와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며 대리쇼핑을 했다. 내 목표는 백화점에 들러 좋아하는 브랜드의 스타킹을 수집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완벽하게 성공했다. (+ 즉흥적으로 색이 예쁜 머플러도 샀다!)

특히, 빈티지 의류로 유명한 오스 상점가 패션 구역에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의 멋쟁이(?)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꼭 도쿄나 오사카의 대형 매장을 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나고야에서의 여유로운 쇼핑을 추천한다.

빈티지 천국 나고야
세계 각국에서 모인 빈티지 의류들이 가득한 오스 상점가. 고급 브랜드만 취급하는 매장부터 옷을 kg당 판매하는 이색 매장도 있다. 사카에에서 오스 상점가로 걸어가는 길에도 곳곳에 편집 매장들이 많으니, 개성 있는 옷을 좋아한다면 여유를 갖고 뚜벅이 여행을 즐겨보자.
  • 오스 상점가
    오스 상점가
    관광명소 · 나고야(사카에 & 오스)
  • JR 나고야 다카시마야
    JR 나고야 다카시마야
    관광명소 · 나고야(나고야 역 주변)
  • 메이테츠 백화점
    메이테츠 백화점
    관광명소 · 나고야(나고야 역 주변)
🛍️ 이 밖의 나고야 추천 쇼핑몰
또 찾고 싶은 NEW 스팟
시케거리

세 번째 나고야 여행인만큼 그 동안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었다. 트리플을 보다 발견한 낯선 이름, '시케거리'.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상점가로, 교토를 떠오르게 하는 목재 건물에 카페, 갤러리, 사케 바 등 다양한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에는 낮에 방문해 이용하지 않았지만, 저녁 시간대에 방문한다면 '마루타니 사케 바'라는 곳에 들려보고 싶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사케 바로, 홈페이지를 검색해보았더니 이 곳 또한 술이 술~술~ 넘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번에는 아쉽지만 술 대신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여기서도 한국인 관광객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대신 나처럼 구글 지도를 열고 전전하는 현지 관광객들이 많아 보였다. 지도를 보다 후기가 좋은 카페를 찾았는데 아앗!!!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당황해서 주변을 기웃거리다 보니, 문 닫은 카페 바로 옆에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가 있다. <란마 1/2>에 나올 것 같은 화려한 의상과 인력거가 세워져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 '너무 과감한 도전인가' 싶었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어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들어서자마자 레트로한 무늬의 벽지와 화사한 꽃이 반겨주었던 카페, '츠키노 우사기(달 토끼)'. 이번 여행 중 꼭 한 번은 들르고 싶었던, 전통 스타일의 킷사텐을 이렇게 방문하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주전자 물 끓는 소리와 색색깔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직원들이 있는 곳. 정말 달 토끼가 살고 있는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나는 과테말라 드립 커피와 이번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오구라 토스트를 주문했다. 분위기만 근사하고 맛은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우려였다. 주문과 함께 원두를 갈아 내려준 커피는 무척이나 맛있었고, 오후에 먹는 오구라 토스트는 더 달콤했다.

우연히 발견한 뜻밖의 장소. 이번 나고야 여행도 꽤 흡족했다.

  • 시케거리
    시케거리
    관광명소 · 나고야(나고야 역 주변)
  • 츠키노 우사기
    츠키노 우사기
    음식점 · 나고야(나고야 역 주변)
고독하지 않은 혼여행
또 봐요, 나고야!

공항을 오갈 때를 제외하고는 여행 내내 버스나 지하철 대신 이곳저곳 걸어다녔다. 비록 '지브리 파크' 같은 핫플은 가지 않았지만, 나고야역 인근의 골목을 탐험하거나, 시케거리처럼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일이 새삼 반가웠다.

오랜만에 보는 작은 영화관에 감탄하고, 노리다케 정원의 따뜻한 벤치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을 바라봤던 일. 귀여운 간판에 가던 길을 멈추고, 현지인이 많아 보이면 그곳이 어디든 일단 기웃거리고 보는 모든 순간들이,

나고야의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나를 배부르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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