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 지방 이야기

리뷰 1
저장 121
출처 shutterstock.com
출처 shutterstock.com
스페인은 유독 지역 감정이 심한 나라다. 일단 축구 경기를 봐도 그렇다.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 FC 와 바르셀로나의 심장 바르셀로나 FC의 치열한 경기만 해도 두 도시가 얼마나 앙숙 관계인지 알 수 있다. 스페인 여행 전, 두 도시의 이런 분위기에 대해 알아두자.
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앙숙 관계일까
스페인 왕국의 형성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앙숙 관계다. 이 원인은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다.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카스티야(마드리드)와 카탈루냐(바르셀로나)가 하나가 된 시기는 1469년.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 이사벨과 카탈루냐가 속한 아라곤 연합의 왕자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결혼 후 1479년, 두 왕국은 통합하며 이후 반도 내 다른 왕국들까지 하나로 결집시켰다. 카스티야 왕국이 스페인 제국의 토대를 다지기 시작한 것.
카탈루냐 반란의 시작
그러나 카탈루냐 왕국은 통일 후에도 고유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 왕권은 복잡한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시행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전쟁으로 인해 17세기 경 쇠퇴 위기가 찾아온다. 시련을 극복하고자 실권자 올리바레스는 카스티야 왕국을 중심으로 스페인을 하나로 정리하기 위해 연합군 창설을 목표했다. 이 과정에서 카탈루냐인들은 불합리함을 느끼며 저항의지를 싹 틔우게 된다. 뒤이어 발생한 1635년 프랑스 전쟁 발발 당시, 왕권은 카탈루냐인에게 지원을 강요했으나 카탈루냐 왕국은 반기를 들며 프랑스를 지지했으나 많은 문제들로 인해 1652년 카탈루냐 왕국은 다시 스페인 왕권으로 합쳐지게 된다.
자치권 박탈과 또 한 번의 불씨
18세기 발발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카탈루냐는 합스부르크 왕조를 지지하며 한차례 전쟁을 일으켰으나 스페인에 패해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당했다. 잠시 고개 숙였던 카탈루냐의 독립의지는 19세기에 접어들며 다시 불씨를 지핀다. 카탈루냐 지방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카탈루냐 문화 부흥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게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선 해당 운동이 전 계층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는 1932년 카탈루냐 자치법 인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등장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집권을 시작하며 카탈루냐 지방은 다시 위기를 겪는다. 프랑코 장군이 자신에게 저항하던 카탈루냐 지방을 함락한 후 카탈루냐어와 카탈루냐기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며 다시 자치권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탄압은 오늘날의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두 지역의 축구 경기가 지금까지도 뜨거운 이유
1936년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카탈루냐 주권을 빼앗던 시기. 바르셀로나 구장이었던 캄푸누 스타디움에서만은 카탈루냐어와 카탈루냐기의 사용이 자유롭게 허락되었다. 수도였지만 바르셀로나보다 덜 부유했던 마드리드는 경기에서만큼은 질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바르셀로나 역시 유일하게 억압당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볼 수 있는 경기에 목숨을 걸었다.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여전히 전 세계를 열광케 하고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카스티야 지방 주요 도시들 훑어보기
리뷰
1
일정 알아서 다 짜드려요
트리플 맞춤 일정 추천 받으러 가기
사진/동영상
최근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