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었던 곰의 심정이 이랬을까? 팀장이라는 직함에 따라오는 수많은 책임. 한 회사에서 3년을 버티는 것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곪아가던 중 때아닌 기회가 찾아왔다. 한 달의 안식 휴가가 주어진 것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 회사는 3년을 근무한 직원에게 30일의 유급 휴가를 준다.
한 달 휴가는 상상만으로도 좋았지만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30일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건 곧 30일 치의 야근이 예약되었단 의미니까.
그래도 나는 떠나기로 결정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재충전의 시간을, 걱정과 고민만 하다 날려버릴 수는 없었으므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 다녀온 여행임을 알립니다.
#한 달 살기의 목적지는
포르투, 너로 정했다!
세상에 없는 여행
“왔노라, 보았노라”로 끝나는 관광 위주의 여행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는 유명 광고 카피처럼, 한 도시에서 느긋하게 살아보는 여행을 원했다. 어떤 일이든 전력투구로 임했던 나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그러다 우연히 거래처에서 ‘적당히’ 살아가는 포르투갈 사람을 만났다. 적당히 분주하고, 적당히 여유로우며, 적당히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신기했다. 문득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이 궁금해졌다.
그곳 사람들은 다들 저렇게 적당히 여유를 즐기며 살아가는 걸까. 그 틈에 잠깐이라도 속해 있으면 나도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가볍지만 꽤 진지한 마음으로 포르투갈 행을 결정했다.
세상에 없는 여행
한 달 살기의 거점으로 삼은 곳은 포르투갈 제 2의 도시라 불리는 '포르투'다. 바닷가 마을의 여유는 물론이고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석양이 매력적인 곳. 방송에 여러 번 소개되기는 했지만, 워낙 멀어서 쉽게 갈 수 없는 곳.
막상 가본 포르투는, 가지 않을 이유보다 가야 할 이유가 더 많은 동네였다.
#별 탈 없는 한 달을 위해
떠나기 전 준비했던 것들
세상에 없는 여행
회사 메신저 차!단!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회사 메신저를 차단하는 것. 작은 연결고리도 남겨선 안 된다. 30일만큼은 여행사 <세상에 없는 여행>의 팀장이 아닌 ‘그냥 나’로 살 것이다. 메신저의 알림을 꺼두는 건 3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그동안 하지 못했을까.
현찰은 최소한만
유럽의 소매치기들은 달인(?)에 가깝다. 특히 아시안은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서 더 조심해야 한다. 도착 후 당장 써야 하는 돈 정도만 미리 환전하고, 이후 필요한 경우에만 조금씩 ATM에서 인출해 사용했다. 수수료가 아깝긴 했지만, ‘보험’이려니 생각했다.
포르투 지도 외우기
틈날 때마다 포르투 지도를 달달 외웠다. 굳이 힘들게 아날로그 지도를 외운 이유는 하나였다. 사각형의 노트북 모니터를 벗어나, 다시 사각형의 휴대폰 화면에 갇히기 싫었기 때문에. 나중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것처럼 이정표도 보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살아보니 어때?
포르투에서, 나는...
도착 후 3~4일은 낯선 도시가 내뿜는 공포에 질려 숙소에만 있었다. 딱 일주일을 넘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새 그들처럼 골목을 산책하기도 했으며, 뿅망치 축제라 불리는 ‘성주앙 축제’도 참여했다. 숙소 대문을 넘어가는 한 발자국이 그땐 왜 그리 어려웠던지.
세상에 없는 여행
세상에 없는 여행
세상에 없는 여행
세상에 없는 여행
영어보다는 포르투갈어를
영어를 쓰는 것보단, 어설퍼도 포르투갈 언어를 써보려고 노력했다. 물 한 잔을 주문하더라도 "agua por favor (아구아 뽀르 빠보르)"라고 말했다. 애써 어눌한 발음으로 주문을 하는 나를 귀엽게 봐준 약국 주인은, 씩 웃으며 영수증에 그 단어를 써서 주기도 했다.
혼자서도 잘 먹기
맛집을 찾아내고 음식을 주문하는 일. 별것 아닌 일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선 그것도 도전이다. 특히 나 홀로 여행은 어떤 메뉴를 주문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당시엔 이런 생고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귀국 후 핸드폰에 저장된 수백 장의 음식 사진을 보곤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 생각보다 잘 먹고 다녔네?’
단골 카페가 생겼다
우버와 택시는 일절 이용하지 않았다. 단 한 달만이라도 포르투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만 포르투는 골목길이 많아 복잡한 탓에 길 잃는 실수도 번번이 저질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실수 덕분에 의도치 않게 단골 카페가 생긴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까지 단골 카페에 들러 마셨던 커피의 향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에 없는 여행
포르투 한 달 살기를
고민해본 적 있다면
편안한 집을 떠나 굳이 한 달씩 외국에서 지낸 이유는, 낯섦이 주는 설렘과 그곳을 제 2의 고향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다랗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듯, 포르투에서의 한 달도 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시는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한 달 살기를 꿈꾼다면, 포르투에서의 한 달을 고민해본 적 있다면. 나처럼 최소한의 계획만 세우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겨봐도 좋겠다. 불확실함은 때때로 우리에게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