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여행이란 착실한 계획보다 우연적 사건들로 크고 작은 행복을 마주하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여행계획을 거의 짜지 않는 편입니다. 자연스럽게 짐을 싸기도 미루고 미루다 늘 출국하는 날 새벽에야 급히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네, 맞습니다. 게으르다는 표현을 쓰기 싫어 포장하는 중입니다.) 뉴욕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여행도 어김없이 부랴부랴 짐을 싸고, 두 시간 자고 공항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여행이 시작됩니다.
뉴욕 하면 타임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자유의 여신상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제게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지도나 책을 펼쳐놓고 책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타입이 아닌 제가 거의 유일하게 하는 ‘여행 준비’는 영화 보기입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뉴욕의 거리를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여행이 또 있을까요? 처음 만난 뉴욕의 타임스퀘어는 정말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김규림
시차 때문인지 일찍 일어난 뉴욕의 아침, 창밖을 보니 영락없는 뉴욕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내가 뉴욕에 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창밖을 바라보기만 해도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슬렁슬렁 걸어 센트럴파크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시티바이크를 타고 타임스퀘어 한복판을 달려봅니다. 공원에서 레모네이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뜨거운 햇살에 행복을 느낍니다.
김규림
그러고 보니 오늘 계획대로 간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아침만 해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는데) 그래서 무척 좋았습니다. 언제고 무작정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 저의 무계획 뉴욕여행을 도와준 것은 킥보드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바라보며 킥보드로 쌩쌩 달려보길 추천합니다. 꼭 관광버스를 타지 않아도, 유람선을 타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뉴욕의 맛’입니다.
계획 없는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쉴 수 있다는 건데요. 어디서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제가 주로 쉬는 방법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뭔가를 쓰거나 그리면 이내 마음이 평안해지거든요.
김규림
친절한 현지인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계획 없는 여행의 우연한 즐거움입니다. 동네를 산책하는데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코리아타운을 정말 좋아한다며 꼭 가보라고 하셨죠. 내친김에 데려다준다고 하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센트럴파크까지 걸었습니다. 뉴욕은 미국인들에게도 인기 많은 관광지인데, 그중에서도 센트럴파크가 최고랍니다. 현지인이 강추하는 센트럴파크라니, 어차피 갈 곳이었지만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뉴욕은 유독, 멍때릴 수 있는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볼 수 있는 브루클린의 해변, 쓸모없어진 철길을 긴 공원으로 업사이클링한 첼시의 하이라인, 해질 무렵 뉴욕의 마천루 사이로 불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뉴욕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순간입니다.
여행에 관해서 만큼은 제가 무계획 형 인간이기 때문일까요? 뉴욕에서 돌아온 후 제 일기에는 ‘퀵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99센트 피자집’, ‘우연히 발견한 베이글 맛집’, ‘하늘이 너무 예뻐서 즉흥적으로 탄 페리’ 등이 소중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여러분의 뉴욕여행은 어떠한 순간들로 기억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