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이 나이쯤 되면 당연히 독립하겠거니 생각했지만, 막상 서른이 된 지금 나는 아직 가족과 함께 산다.
다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그저 독립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왔을 뿐이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거나, 종종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러던 중 직장 동료로부터 캠핑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캠핑을 떠나면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도 있다고 했다. 앗, 모두 내가 독립하면 하고 싶던 것들 아닌가!
그래서 나는, 독립 대신 캠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캠핑으로 이룬 나만의 공간...☆
여자 혼자 캠핑,
무섭지는 않을까?
캠핑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이라, 처음부터 혼자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로캠핑러인 고모네 가족과 연습 삼아 먼저 다녀왔다.
다함께 도착한 곳은 강원도 홍천의 오토캠핑장! 오토캠핑장은 기본적으로 텐트 칠 수 있는 공간(사이트)이 붙어 있어서 몇 걸음만 가면 다른 사람의 텐트가 보인다.
케이트 님의 사진
고모네의 멋진 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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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은 홍천 캠핑장의 노을!
'가까운 곳에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텐트 안에 있으면 바깥 공간과 분리된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눈이 반짝이는 나에게 고모부는 캠핑할 때 주의사항과 팁들을 깨알같이 전수해주었다. 다 듣고 나니 "혼자서도 할만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차올랐다!
아, 밤에 자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아무 데서나 잘 자는 무던한 성격도 한몫했고. 히히.
막상 캠핑을 가려고 하면 뭐부터 해야할 지 막막하다. 그럴 땐 캠핑장부터 알아보자. 요즘 같은 날씨(5~6월)에 인기 캠핑장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다.
예약하기 전 샤워실, 화장실, 개수대, 매점 등 인프라가 충분한지 확인은 필수!
나는 퇴근하고 바로 캠핑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다행히 회사와 가까운 곳에 캠핑장이 있었다. 도심에서 즐기는 캠핑이라니...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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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러들의 성지라는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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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텐트들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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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가 가득 차 뒷좌석까지 침범한 캠핑 짐들..
예약 후에는 캠핑에 필요한 준비물만 챙기면 된다. 하룻밤 일정이라 최대한 미니멀하게 챙기려 했으나... 태생이 맥시멀리스트인지라 이것저것 넣다 보니 한 짐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조언을 받아 준비한 것들은 아래와 같다.
💡잘 때 필요한 것
타프(천막), 원터치 텐트(1인용), 텐트 밑에 칠 방수 매트, 텐트 안에 깔 쿠션 매트, 침낭(베개도 있으면 좋다), 필요하다면 텐트 앞에 깔 돗자리, 아직 추울 것 같으니 전기장판
💡먹을 것
2구 버너(부탄가스 필요), 코펠, 그릇, 일회용 수저 외 가위 및 집게 같은 도구들, 요리해서 먹을 재료들(고기와 감바스 재료, 각종 양념 그리고 빵과 계란, 맥주, 물을 준비했다!)
💡그 외 필요한 것
랜턴(산속이다 보니 불이 없어서 여러 개면 좋다), 테이블, 의자, 장작을 피우기 위한 화롯대, 토치, 장작용 집게, 막장갑 등
분명 나는 캠핑장에 6시에 도착했는데, 저녁을 먹으려 보니 10시였다! 텐트 치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는데, 오히려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
가지고 간 캠핑 장비가 전부 새것이다 보니, 자잘한 포장 뜯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게다가 장작 피우는 법을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 결국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더랬다.
사장님의 손길이 닿은 화롯대는 불을 활활 피웠고, 불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장작불에 고기를 구우려던 계획 또한 틀어졌다. 2구 버너를 산 과거의 나에게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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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꽤나 멋진데~' 하고 감탄하던 것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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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은 왜 이렇게 꼼꼼히 붙어 있는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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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통 안붙던 화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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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피워주시니 활활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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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한 2구 버너, 너 참 잘 샀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배도 채우니 여유로운 밤이 찾아왔다.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보고 있으니 '이 맛에 캠핑을 오는구나..' 싶었다.
고양이가 텐트 앞을 잠깐 방문한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누린 밤이었다. 산새 소리를 듣고 눈 뜬 아침은 낯설지만 평화로웠다.
다음날 아침엔 산속의 서늘한 공기를 즐기며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라면을 끓였다. 비록 퐁퐁과 수세미를 챙기지 못해 키친타월로 설거지해야 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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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캠핑의 베스트샷! (삼각대가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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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감바스와 소고기를 먹는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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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텐트 안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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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롭던 핸드드립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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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최고의 맛이었던 캠핑장에서 먹는 라면.
처음 해 본
혼자 캠핑 만족도는?
백 점 만 점에 백 점을 주고 싶다! 약간의 고생은 있었지만, 오랫동안 꿈꿔 온 혼자만의 시간을 즐겁고 알차게 누렸으니까.
인생 첫 혼캠을 다녀온 후, 물욕이 가득 차올라서 최근엔 3인용 텐트도 중고로 샀다. 텐트 공간도 넉넉해졌으니 다음에는 친구들도 초대해보려고 한다.
올해 목표는 제주도 캠핑! 근교 캠핑으로 기본기를 다지면 '캠핑의 성지'라는 제주도에서 캠핑을 해보고 싶다. 얼른 떠나기 좋은 날이 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