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숙소 앞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그가 처음 데려간 곳은 웬 언덕배기. 처음에는 정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뜨갈랄랑이었다. 울창한 열대우림과 계단식 논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그제야 눈이 탁 트이고 머리가 상쾌해졌다. 이 투어, 시작이 좋다.
다음 코스는 힌두교 사원. 안에 들어서자 커다란 연못에서 질병과 걱정을 씻어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샘솟는 물은 성수로 여겨진다고 한다. 치통을 치유하는 성수가 있다고 해서 진지하게 입수를 고민했지만... 고민으로 끝내는 걸로.
출출할 즈음 낀따마니 마을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귀가 먹먹할 만큼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 눈앞에 탁 트인 화산지대가 펼쳐졌다. 움푹한 분화구와 우뚝 솟은 활화산, 그 사이를 흐르는 호수까지. 격렬한 화산활동이 빚어낸 아름다운 경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낀따마니 마을에선 루왁 커피 농장 투어도 즐길 수 있다고. 꼭 식물원에 견학 온 기분으로 커피 농장을 걸었다. 생전 처음 보는 커피나무 잎도, 전통 방식으로 콩을 볶고 체에 거르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카페인 때문인지 여행을 즐긴 덕인지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지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었을 뿐인데, 쇼핑지로 유명한 우붓 시장에 도착했다. 돈을 쓰라는 계시(?) 아니겠냐면서 알록달록한 기념품을 열심히 구경하기 시작. 라탄 코스터와 향이 좋은 비누를 몇 개 샀다.
슬슬 허기가 져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샌드위치와 주스를 주문했다. 속이 꽉 찬 샌드위치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부린다. 맛있게 먹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졸음. ‘꼭 낮잠을 잘 것.’ 번뜩 떠오른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어진 달콤한 낮잠은, 역시 꿀맛.
셋째 날. 느긋이 조식을 먹고,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첨벙대며 느슨하게 고민했다. 오늘은 뭘 할까. 유심도 가이드북도 없을 때는 현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최고지 싶어, 프론트로 가서 사장님께 물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뭘 하면 좋을까요?”
트래킹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냉큼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코스를 추천받고 내친 김에 택시 픽업까지 부탁드렸다. 정말이지 세상 편한 여행이다.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이름부터 재미난 '짬뿌한 릿지 워크'.
짬뿌안 워크는 편평한 언덕길을 걷는 트래킹 코스다. 앞은 탁 트였는데, 양옆으로는 울창한 아자수 숲이 펼쳐져 있다. 꼭 정글 한가운데를 안전하게 걷는 기분이랄까. 한 시간쯤 걸으니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졌다. 어제는 추수, 오늘은 모내기라니. 누가 뭐래도 우붓 최고의 볼거리는 논 구경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