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해외 자유여행을 꿈꾸시는 효자 효녀 유나이티드 여러분! 경험자로서,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점 몇 가지를 밝혀둡니다. 일단 결론 먼저 이야기하고 뒷얘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빠밤.
"내 부모님도 그냥 아줌마 아저씨입니다."
이 모든 여정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마치려면, 가족애에 모든 것을 걸지 말고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부모님이 인내해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여러분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스페인에서, 별 게 다 궁금한 엄마와 함께
"우리 딸이 데려가면 아무데나 좋지.
엄마 신경쓰지 말고 결정해."
이거 거짓입니다.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라 엄마의 심정만 진실합니다. 여기서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아무데나’는 어머니 기준입니다. 저를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호스텔 20인실에서도 잘 잡니다. 이런 제가 ‘아무데나’에 저희 어머니를 데려가잖아요? 호래자식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말하는 '아무거나'
· 패키지여행에서의 숙소 컨디션
· 간간이 한식 제공
· 적어도 1일 2관광지, 1맛집을 포함한 뭐라도 짜인 일정
· 변수의 부재
자식만큼 소중했던 두 분의 여행 메이트, 셀카봉 @톨레도
부모님과 자유여행을
꿈꾼다면 알아야 할 5가지
그럼 지금부터, 여행에 필요한 각종 예약과 진행을 앞둔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을 어떻게 통역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지 열거해보겠습니다. 엄마 아빠를 향한 애정 필터를 과감하게 걷어내시고, 그저 두 중년의 패키지여행을 책임질 가이드의 마음으로 파이팅 있게 읽어보세요.
산히네스 츄러스집. 먹는 방법 설명중 @마드리드
1. "엄마 아빤 아무거나 잘 먹어."
아니요. 엄마 아빠의 마음은 진심이지만, 결과적으로 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님이 호기롭게 라면 없이도 해낼 수 있다고 하셔도, 꾸역꾸역 라면과 꼬마김치를 싸봅시다. 현지식이 세 끼를 넘어가면 고객님들 컨디션 차이가 나기 시작하거든요. 현지식 사이에 익숙한 음식을 끼워넣으면 되는데, 라면이 다 떨어졌고 한식당도 없다면 구글맵에서 Vietnamese Restaurant를 검색해보세요. 세계 대도시라면 어딜 가나 쌀국수집이 있거든요! 익숙한 맛을 그리워질때쯤 여행의 활력소가 될 거예요.
한 눈 팔면 큰일나요. 온갖 잡상인&호객꾼에게 넘어가있거든요...
2. 엄마 아빠는 나이가 많습니다.
'이게 무슨 당연한 소리야'싶겠지만, 중요합니다. 숙소 예약할 때 반드시 주소를 알아내서 우리가 이용할 교통수단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합시다. 만약 그게 지하철인 경우 출구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숙소 자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등을 숙소에 문의해 확인한 후 예약하시길 추천드려요. 그렇게 해서 알아낸 정보는 반드시 미리 공유합시다.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도착하면 만날 숙소 컨디션은 어떤지 알려준다면 의연하고 건강하게 따라나서실 수 있을 거예요.
현지 대학생들과 술판 벌어진 어느 밤 @그라나다
3. 잘 외운 메뉴 하나, 평생 사골 된다.
내 자식이 외국 가서 스무스하게 주문을 한다는 것, 이거 굉장히 자식뽕이 차오르는 순간입니다. 그게 그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한다는 뜻 이 아니에요. 추로스 집 가서 “(손가락 1) 추로스, (손가락 1) 뽀라스, 초콜라떼 뚜!” 이런 거를 알아봤다가 써먹으라는 겁니다.
메뉴에서 콕 찍어도 좋고요. 그리고 물/탄산수/맥주/레드와인/화이트 와인 같은 걸 알아갔다가 말해봅시다. 이게 귀국 후에 3개월쯤 지나면 “걔가 스페인어로 프리토킹을 하더라” 정도의 무용담이 됩니다. 저것을 내가 키웠다니!
없던 애교를 쥐어짜보는 것도 효도여행의 묘미 @마드리드
4. 엄마 아빠와 나 사이의 문화차이를 인정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자유여행을 하는 일은 엄마 아빠의 세계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값싼 식당이 아닌데도 서비스가 느릴 때, 유럽 집 벽들이 얇아서 내 돈 주고 예약한 숙소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지 못할 때, 그냥 빨리 계산하고 나가고 싶은데 테이블에서 계산하고 또 잔돈을 테이블에서 기다려야 할 때…….
여행하면서 그런 순간을 엄마 아빠가 직면하게 되면 우리가 그 상황에 처음 놓였던 때를 떠올려서 ‘여긴 그렇더라고’ 하고, 마음으로라도 같은 편이 돼주세요. 내가 이 불편에 익숙해졌다고 엄마 아빠도 내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온 건 아니니까요.
한국이었으면 못 찍었을 포즈. 와락 껴안는 엄마와 싫지 않았던 나.
5. 우리는 사실 남이에요.
마치 내가 “우리 엄마 아빠도 그냥 아줌마 아저씨다”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더 많은 배려와 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한 것처럼, 엄마아빠에게도 “자식새끼지만 어차피 남임”을 알려 드려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져요.
지하철 탑승 성공! 투어버스 없이도 용감한 두 분
생각해보면 하루종일 엄마 아빠랑 같이 있었던 적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은근 많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어떤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요. 그러니 원하는 걸 꼭 말해줄 것, 그리고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알아주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면서 본인과 다른 일행의 기분을 망치지 않을 것. 요거는 약속합시다!
엄마아빠, 첫 자유여행 힘내줘서 고마웠어♡
진짜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것저것 치밀하게 노력하지 않더라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유여행은 원래 힘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여정을 가지고 동행한다는 건 여행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원래 그런 게 본질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들로 금방 채워져요.
인스타갬성 사진구도를 알려드렸어요 @마드리드 츄러스집
셋이서 함께 어떤 풍경 앞을 마주할 때,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데 지금도 1분 1초가 간다는 게 슬펐던 순간들 같은 걸로요. 그러니까 피곤해도 퐈이팅하세요. 갔다 와본 입장에서 말하는데 진짜 후회 안 하실 거예요. 효녀 효자 여러분, 그리고 예민한 자식들과 동행할 세상의 수많은 엄마 아빠 여러분의 개고생을 응원합니다.
30년 같은 곳을 보며 산 커플의 예쁜 뒷모습 @세비야
부모님과 자유 여행하기
좋은 여행지 추천✈️
베트남, 다낭
지금 전국민이 여행썰 푸는 다낭을 왜냐고요? 그 대화에 엄마 아빠도 낄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바다와 도시가 함께 있고, 서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리조트와 레스토랑에서 고급진 여행을 하실 수 있거든요. 특히 첫 해외자유여행이라면 추천!
호주, 시드니
외국물 먹는 기분을 만끽하자면 더 먼 비행을 해도 되겠죠? 오페라하우스부터 맨리비치까지, 여러날 머물러도 볼 것 즐길 것이 넘쳐나는 시드니를 추천합니다. 비교적 익숙한 영어를 쓸 수 있다는 점도 자식 가이드에겐 플러스. 또 하나, 시드니 전역은 각국에서 건너온 국수 맛집이 포진.
스페인, 바르셀로나
‘꽃할배’로 중년의 로망이 된 도시, 바르셀로나는 어떠세요? 가우디의 건축물, 바르셀로네타 해변, 구시가지의 골목길 등이 한동안 부모님 프사를 책임져줄 겁니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볼거리 많은 이 도시에서 현지 가이드 투어를 이용해보세요. 훌륭한 조력자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