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작은 유럽 신비로운 달랏 여행

달랏은 베트남 남부지역에 속하는 도시로 해발 1,500m 고원에 자리하고 있다. 호치민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면 7~8시간 정도 소요되고, 나트랑에서 출발하면 조금 더 가까워진다.

달랏으로 향하는 이번 여행길은 시작부터 꽤 고생스러웠다. 요란한 빗소리가 쉴 새 없이 버스 창문을 두드리고, 갑작스레 강해진 바람에 나무들은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바람을 뚫고 버스는 힘겹게 언덕을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자 버스의 시동이 꺼졌다.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내리던 비가 멈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하늘이 나타났다. 달랏에 도착한 것이다. 이 도시는 언제 오더라도 신비롭고 새롭다.

달랏에서의 아침은 따뜻한 국물 맛이 일품인 퍼 보(phở bò)에 베트남식 바게트 빵인 반 미(bánh mì)를 곁들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벼운 점퍼와 청바지를 입었지만, 생각보다 낮은 온도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여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라 가벼운 마음으로 달랏 시내 명소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첫 시작은 ‘봄의 향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쑤언 흐엉 호수. 호수 주변은 이미 봄이 찾아온 모양이다. 나지막한 건물 사이로 높게 뻗은 초록 초록한 나무와 꽃, 말 마차까지. 마치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을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호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달랏에 왔다는 게 실감됐다.

호수 산책 후 찾아간 곳은 1931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달랏 대성당. 일명 ‘수탉 성당'으로, 47m 첨탑의 십자가 끝에 세워진 수탉 조형물은 풍향계 역할을 한다.

미사가 열리지 않는 시간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고 해서 잠시 들렀는데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성당은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달랏 시내 어디서든 눈에 띄는 성당을 볼 때마다 반가웠다.

호수를 지나 바오 다이 황제의 여름 별장으로 이동했다. ‘황제의 여름 별장’이라는 이름치고는 무척이나 소박해 보였지만, 그 옛날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분명 대단한 건물임이 틀림없다.

황제가 사용하던 직무실과 소품들, 모두 그대로였다. 진열장 뒤로 연결된 비밀 통로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 답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관광명소 몇 곳을 구경하다 보니 기온이 꽤 올라, 반팔 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섰다. 달랏은 베트남 최대 커피 생산지답게 다양한 원두의 커피를, 다양한 방식으로 맛볼 수 있다. 카페마다 저마다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을 정도다. 정성스럽게 내려준 핸드 드립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짧은 여유를 맛보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번에는 달랏 시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달랏 케이블 카를 타보기로 했다. 탑승장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달랏은 소박하지만 평화로웠다. 도시라고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빌딩들이 없으니 무척이나 낯설다.

케이블카는 풍황산에 있는 죽림 선원 상부까지 연결된다. 죽림 선원은 호치민 통일 궁을 지은 건축가가 지은 선원이자, 달랏은 물론 베트남을 대표하는 불교 선원으로 유명하다.

안쪽에 마련된 분재 공원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경내를 둘러보고 인근 노점상에서 달랏 명물 음식인 반 짱 느엉도 먹고, 큼지막한 군고구마도 하나 샀다. 허기를 채워줄 간식으로 더없이 소중하고 훌륭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쑤언 흐엉 호수 인근의 람비엔 광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질 시간이다. 광장에서 현지인처럼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군것질하며 해넘이를 감상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달랏 야시장에 들렀다. 썰렁하기만 했던 거리가 어느새 노점상과 사람들로 가득 찼고,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먹거리로 즐비했다. 꼬치구이도 먹고, 시원한 사탕수수 주스도 마시면서 시장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또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은 조금 액티브한 체험을 해볼 요량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은 후 다딴라 폭포로 향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입구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 급한 마음에 서둘러 줄을 서서 알파인 코스터 티켓을 끊었다. 일반 루지와는 다르게 레일 위를 달리는 시스템으로, 종착지는 다딴라 폭포 앞이다.

물론 산책 삼아 걸어 내려갈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짜릿한 속도감을 체험할 수 있는 루지를 타고 가는 게 재미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힘든 오르막을 걸어서 오를 필요가 없다. 이른 시간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루지에 올라, 시원한 폭포수와 자연이 만들어 낸 경관을 감상하며 스릴을 만끽했다.

다딴라 폭포는 스위스 인터라켄, 필리핀 세부 가와산과 더불어 세계 3대 포인트로 손꼽히는 곳이다. 조금 더 하드코어한 액티비티를 찾는다면, 짚라인이나 캐녀닝도 할 수 있다. 단, 난도가 있는 액티비티인 만큼 체력이 약한 초보자나 어린이, 노약자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액티비티로 소비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저녁 식사는 달랏식 바비큐로 정했다. 다양한 고기와 각종 해산물, 거기에 달랏 현지에서 공수하는 각종 채소까지 화로에 구워 먹기만 하면 된다.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끼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참새 방앗간에 들리듯 다시 야시장에 들러, 평소 좋아하는 반 옹라 즈어(bánh ống lá dứa)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달콤하면서도 쫀득한 식감까지 디저트로 완벽했고, 고단했던 하루의 마침표로도 완벽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달랏 역에서 관광 열차를 타고 린푸옥 사원을 둘러본 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달랏의 특산품을 쇼핑하는 것이다.

관광 열차는 전날 호텔 안내 데스크에 부탁해 표를 예매했다. 예약 번호를 받고 기차역에 도착해, 계산 후 출발 시간에 맞춰 기차에 탑승했다. 짜이맛 역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짜이맛 역에서 린푸옥 사원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린푸옥 사원은 현지 불교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졌다. 주로 깨진 도자기 조각과 유리병 조각을 사용했는데 빛에 반사돼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거대한 드라이플라워 입상까지 둘러본 후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 역으로 돌아왔다. 짧지만 낭만적인 기차 여행을 즐겼다.

마무리는 고 ! 달랏 점에서 달랏 특산품을 주워 담는 것. 달랏산 아티초크 제품이나 딸기 잼, 말린 과일과 꽃차 등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좋고, 선물용으로도 제격이다. 가족, 친구, 지인들을 위해 양손이 무거워질 만큼 담았다.

한국의 물가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 착한 가격에 알찬 쇼핑까지 완수하고 나니, 달랏 여행을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베트남의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달랏에서 봄의 향기와 자연이 주는 착한 선물을 마음껏 누린 시간이었다. 과거 프랑스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달랏은 세상의 온갖 재미를 담아 놓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이 주는 여유와 즐거움, 여행의 낭만과 호기심이 있는 새로운 베트남 도시, 달랏.

다가오는 새봄, 달랏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