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우리를 농구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추억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가마쿠라는 <슬램덩크>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가마쿠라는 언제든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특별한 곳이자,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바다 마을이다.


가마쿠라의 가장 큰 매력은 일본 특유의 감성이 가득한 일상의 풍경들이다. 이곳에 왔다면 가마쿠라 시와 후지사와 시를 잇는 에노덴 전차 탑승은 필수.
전차는 마을 한복판을 달리기도 하고, 해안가에 있는 철로 위를 달리기도 한다. 돌담과 나무가 우거진 철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지점, 창밖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데 이때는 정말이지 탄성을 금할 수 없다.


에노덴에는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기관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전차의 맨 앞 칸에 타면 작은 창문 너머로 기관사의 모습이 보이는데 2024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날로그 시계를 사용해 정차 시간을 맞추거나, 맞은편 열차와 교차할 때는 서로 손을 들고 인사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만날 수도 있다.

의외의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구간도 있다. 과연 열차가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 길을 거침없이 지나가는 순간이 있는데 전차는 아랑곳 않고 일반 가정집이나 식당 바로 앞을 지나간다.
나는 가마쿠라에 갈 때마다 노리오리쿤을 끊어 에노덴 여행을 즐긴다. 특별한 목적이나 장소를 정해두지 않고, 일본 전차의 감성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이다.
이 작고도 낭만적인 열차가 정차하는 주요 역에는 어떤 매력이 숨어 있을까.


가마쿠라 역은 가마쿠라 여행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종착점이 되기도 한다. 가마쿠라 역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후지사와 역에서 도쿄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 반대의 코스로 도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마쿠라 역에서 나오면 상점가인 고마치도리가 보이는데 양쪽으로 식당, 소품샵, 카페들이 가득하다.


주먹밥과 같은 간단한 간식부터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카이센동, 말차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같은 디저트까지.
이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으니,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이곳에서 든든하게 배부터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에노덴이 정차하는 하세 역은 가마쿠라 대불이 보존되어 있는 고토쿠인으로 유명하다. 약 11미터 정도 되는 이 대불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담겨 있는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불이나 사찰에 관심 없는 여행객들에게는 매력이 없는 곳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하세 역 주변에는 곳곳에 음식점과 카페가 있다. 역 부근에 있는 골목을 탐방하다보면 일본 소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의 OST 오프닝에 나오는 기찻길을 보려면 이곳에 내려야한다. 최근에 개봉한 극장판이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족애를 다룬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의 배경이 된 바다 마을이 바로 가마쿠라와 인근에 있는 에노시마로, 시치리가하마 역에서는 영화 속 고즈넉한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역에서 내려와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면 눈앞에는 바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 에노덴이 지나가는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지는데 영화 속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해안가 쪽으로 걸어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모래사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난다. 서핑으로 유명한 곳이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물론,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다 저 편에는 에노시마 섬이 보이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후지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에노시마는 가마쿠라와 함께 가나가와현 쇼난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힌다. 보통은 에노시마 섬으로 들어가 전망대에 올라가거나 이 지역에서 유명한 특산물인 시라스(멸치 등의 치어)를 밥 위에 덮어 나오는 시라스동을 즐기곤 한다.
하지만 내가 에노시마를 찾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후지산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는 것. 에노시마 역에 내려 섬을 향해 계속 걷다 보면 카테세 니시하마 해변이 나오는데 나는 늘 그곳 둑에 앉아, 편의점에서 미리 사 온 맥주를 꺼내서 마시며 노을을 기다리는 재미를 즐긴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머지않아 그림같은 노을이 펼쳐지는데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사진으로 담아내거나, 탄성을 연발하기도 하고, 턱을 괴고 앉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면서.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나의 가마쿠라 여행은 이렇게 찬란한 에노시마 하늘 아래에서 끝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