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국화꽃이 피는 계절. 둘째 딸 부부가 경주로 놀러 가자고 했다. 숙소는 보문호가 보이는 방이었는데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짧은 휴식을 하고 솔거 미술관으로 출발했다.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으나, 바깥에 잘 꾸며진 정원과 저수지가 특히 인상 깊었다. 딸과 팔짱 끼고 요즘 사는 얘기 두런두런 나누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낙지마실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동궁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미 몇 번이나 왔던 곳이지만 늘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 그런데 방문한 날 국화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색색의 국화가 동글동글 핀 모습이 앙증맞아 의도치 않게 눈이 호강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남편과 사위를 호텔에 돌려보내고 딸과 둘이서 보문호반길을 따라 걸었다.
밤이 되니 사방이 불빛으로 화려해 낭만적이었다. 특히 옛 정자와 연못이 조화로운 보문정이 가장 볼만했다. 저녁은 들안길 참숯화로 숯불갈비에서 거하게 먹는 바람에 소화하느라 애먹었다.
다음 날은 일어나자마자 남편과 보문 골프 클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필드가 넓어서 초보자인 나도 그나마 편하게 치고 나왔다. 딸 부부와 만나 맷돌순두부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든든하고 고소한, 아주 맛있는 두부를 먹어 기분이 좋았다. 종교는 없으나 한적한 절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분황사로 걸음을 옮긴다.
딸이 주변에 붙어있는 황룡사 역사 지구, 동궁과 월지는 덤이라 생각하고 둘러보자 한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으나, 아무렴 어떠냐 하고 천천히 구경했다.
나는 평소 1시간씩 걷기 운동을 해서 안 걸으면 좀이 쑤시지만, 남편은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힘들었을 텐데 불평 없이 따라줘서 고마웠다.
점심으로 별채반 교동 쌈밥에서 건강한 밥상으로 허기를 달래고 마지막 장소인 화랑의 언덕으로 갔다. 여긴 딸이 가고 싶다고 했던 장소.
절벽에서 사진을 찍는 게 필수라는데, 나는 심장이 떨려서 바위 근처에서 찍고 말았다.
요즘 가을을 타는지 마음이 공허했으나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