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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라는 말을 들으면, 설운도의 ‘싸아암바, 쌈바, 쌈바, 쌈바~~’가 머리 속에 자동 재생되거나, 혹은 화려한 의상과 글래머러스한 댄서들의 몸놀림만을 떠올렸으니, 브라질에 가기 전까지 나의 머리 속에서 ‘삼바'는 사실 좀 오염되어 있었다고 해야겠다. 2월의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에 가서 삼바 카니발을 보기 전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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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같이 공부하던 브라질 친구가 말했다.
“나 잠깐 집에 좀 다녀올게. 삼바 카니발에 나가야 되서 말이야.”
응? 삼바 카니발? 게다가 그걸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나.간.다.고?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너 춤추는 거 보고 싶은데, 나도 따라가도 돼?” 그 친구는 브라질 사람 특유의 호쾌한 얼굴로 말했다.
“당근이지! 우리 집에 방 많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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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낯설어진, 어쩌면 다신 볼 수 없는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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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o TEAMO(리우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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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카니발은 매년 2월경 열리는데, 사흘간의 카니발 기간 동안 온 나라가 법정 공휴일이다. 내가 리우에 도착한 날은 카니발 1주일 전이었지만, 기다리기에 지친 브라질 사람들은 이미 반쯤 축제 기분으로 저녁마다 동네 공원에 모여 각자의 코스튬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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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에 관한 걱정을 많이 들었는데, 염려했던 게 무안할 정도로 모두가 환대해주었다. 리우 사람들은 카니발 기간이라 버스 노선이 바뀐 줄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구글 번역 앱을 켜고 먼저 다가와 주었고, 과일 값을 흥정해주었으며, 꼭 봐야 하는 해변과 좋은 카페를 알려주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조차, 넌 어디서 왔니? 브라질은 처음이야? 가장 좋을 때 왔구나, 파티를 즐겨! 그리고는 같이 사진을 찍고 볼 뽀뽀를 하고 바이바이 인사를 했다. 과자나 콜라, 맥주를 나눠 주기도 하고, 럼 병을 통째로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입에 부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를 겪은 지금은 낯설어진, 어쩌면 다신 볼 수 없는 풍경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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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카니발의 가장 클라이막스인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올림픽 경기장 같은 ‘삼바드로모’라는 곳인데, 폭 100m에 길이 700m의 직사각형 경기장이다. 퍼레이드가 가운데를 지나가고, 양쪽에는 계단식으로 된 관중석과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9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티켓이 워낙 비싸기도 하고 구하기도 어려워서 경기장 밖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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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레이드의 화려한 장식과 댄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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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에는 매년 치열한 예선을 거친 12개 정도의 삼바스쿨이 참가하는데, 이를 위해 각 팀들은 1년 내내 준비를 한다. 카니발이 끝나는 동시에 내년 준비가 시작되는데, 예선 리그는 축구와 비슷해서, 연출감독과 음악감독을 선임하고 그 해의 컨셉과 스토리를 정해 연습을 시작한다(성적이 안 좋은 감독은 바로 경질된다). 퍼레이드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코스튬, 마차 등을 준비하고 제작하는 것은 정해진 파벨라(빈민촌) 마을에 맡긴다. 기업은 스폰서를 하고 지방정부도 보조금을 지급한다. 삼바 퍼레이드는 리우의 극빈층 사람들에게 1년 치 일거리를 제공해 주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브라질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1/3은 카니발 기간에 온다고도 하니, 종교적인 의미와 더불어 카니발은 브라질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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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쿵쿵 울리는 퍼레이드는 이틀이나 계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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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는 저녁 9시쯤에 시작해 그 다음날 아침 6시까지, 그것도 이틀이나 계속되는데 일단 시작되면 정말 땅이 쿵쿵 울릴 정도로 현장감이 대단하다.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내내 춤과 음악이 멈추지 않는데, 행진하는 댄서들을 보면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다 섞여 있다. 퍼레이드의 무리 속에서 유난히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춤을 추시던 어떤 아주머니는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가 의족이셨다. 무거운 의상에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는데, 불편한 몸으로 얼마나 연습을 하셨을지가 눈에 선해서, 그리고 정말 행복해 보이셔서 괜히 울컥했다. 각 팀의 개성이 가득한 퍼레이드를 보며 감탄하고 먹고 마시고 박수치고 응원하다보면, 멀리서 파랗게 하늘이 밝아온다. 아침이 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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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옷이 내 친구. 2위에 입상해서 잔치분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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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시작은 7시, 저녁이 아니라 아침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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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환하게 밝아 땀에 찌든 얼굴이 부끄러워질 때쯤 퍼레이드가 끝났다. 아.. 너무너무 재밌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뛰네! 정말 브라질 사람들의 에너지는 짱이야!! 라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하는 블럭파티가 있는데, 갈래? 맥주 공짜로 줘. 7시부터 시작이야.”
밤 새워 놀았는데, 오늘 밤에도 또 논다고?? 역시나 에너제틱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알겠어. 그럼 가서 좀 씻고 한숨 자고,, 한 여섯 시쯤 만날까?” 라고 대답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응? 아니 아침 7시에 시작이라고! 이제 좀 있으면 시작해,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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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서는 파티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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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여행을 하는 2주 동안, 나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두 시간을 넘지 못했다. 너무 많은 놀거리가 눈앞에 있어서 잠 따위를 잘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힘이 불끈불끈, 피곤하지 않았다. 나라 전체가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활기차고 즐거웠다. 브라질 사람들의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나라에도 ‘수줍다', ‘우울하다', ‘망설이다' 같은 단어가 있을까? 아니, 브라질 사람 중에도 ISTJ가 있을까?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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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도쿄 김작가' 읽고 쓰고 걷고 마시고 잊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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