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으로 뭐든 다 구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직접 발품을 팔아 먼지를 털고 보물을 찾아내는 기쁨은 꽤 중독성이 있다. 100년전 일본 문학을 연구하는 나는, 그래서 검색으로도 못 구하는 책들을 찾으러 종종 진보초에 간다. 오래전에 절판된 책, 아무도 찾지 않아 헌책방 사이트에도 나오지 않는 책들이 세계 최대 규모의 고서점가 어딘가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희귀한 책이나 꼭 필요했던 자료를 발견하는 우연과 재미는 덤이다. |
|
|
도쿄의 중심부 간다(神田) 진보초(神保町)는 헌책방이 모여 있는 거리로 유명하다. ‘간다 고서점 거리(神田古書店街)’로도 불리는 이곳을 가려면, 진보초(神保町) 역에서 내리면 된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한 번쯤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미술, 취미, 문학, 지도, 역사 등 다양한 전문 고서점들이 150개 정도 모여있는데, 책 뿐 아니라 옛날 엽서나 지도, 레코드 전문점도 있다. |
|
|
|
|
|
진보초 고서점 거리는 일본의 예스러운 풍경과 현대의 풍경이 공존한다. 1880년부터 이 지역 주변으로 메이지 대학교(明治大学), 주오대학교(中央大学), 니혼대학교(日本大学), 센슈대학교(専修大学) 등이 설립되면서 대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이후 출판사, 서점, 고서점들도 자리를 잡았다.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산세이도(三省堂)도 여기에 있고, 진보초에서 가장 오래된 다카야마 서점(高山書店)은 1875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
|
|
진보초 골목골목마다 들어선 크고 작은 고서점들을 둘러보면, 역시 일본은 출판 왕국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단돈 10엔짜리 문고판부터 몇 백만엔이 넘는 어마무시한 가격의 희귀 고서들까지 책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서점 바깥에도 벽을 따라 책장이 늘어서 있어, 마음대로 책을 고르거나 서서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전자책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나처럼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
|
|
|
그 많은 책방 사이에는, 한국책을 파는 전문서점도 있다. 진보초의 유일한 한국서적 전문 북카페인 「책거리chekccori」는 한국의 다양한 책들을 일본에 소개하고, 또 한국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설이 이곳을 통해 일본에 소개되었고,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일본 분들이 많이 찾는다. |
|
|
|
나는 진보초 고서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추리, SF 관련 장르 소설을 주로 다루는 서점인 ‘앳 원더(@ワンダー)’를 찾아갔다. 꼼꼼한 주인장의 성격을 드러내듯, 책장 가득 일본 추리소설과 SF소설이 작가별, 출판사별, 시대별로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어, 한 권 한 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
|
|
장르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잡지, 영화잡지, 50년대 이후 영화 포스터와 입장권, 팜플렛 등도 판매하고 있어서 “이런 것도 있다니!” 하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검색하다가 없어서 포기했던 일본 SF 작가의 소설 한 권, 그리고 그 작가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다른 작가의 소설 두 권을 발견하는 행운도 있었다. |
|
|
아, 고서점 거리에서 책을 구매하고자 한다면 꼭 현금을 가져가길 바란다. |
|
|
|
진보초에 고서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대학이 많아 학생들이 즐겨찾는 라멘 가게와 카레가게가 많아서, ‘카레 격전지’라고도 불린다. 웬만큼 맛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니 진보초에서 유명한 카레 가게는 믿고 먹으면 된다. |
|
|
|
‘교에이도(共栄堂)’나 ‘본디(ボンディ)’ 등에서 일본 카레를 맛보기를 추천하는데, 점심시간은 웨이팅이 기니까 이른 점심이나 늦은 점심이 좋겠다. 출판사가 많아서 그런지 소바가게도 많은데, 먹고 있다보면 새로 만드는 책 얘기를 나누는 편집자들의 고충(?)도 엿들을 수 있다. 메밀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네무리안(眠庵)’을 추천한다. |
|
|
오래된 거리인 만큼 일본의 예스러운 카페도 남아있다. 책방 순례를 하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는 레트로 카페로 유명한 「사보루(さぼうる)」나 「미롱가(ミロンガ)」에 들러도 좋다. 새로 산 책을 빨리 읽고 싶어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부랴부랴 책을 펼치는 애독가들을 만날 수 있다. |
|
|
|
예전에는 일본 지하철을 타면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궁금했던 적이 많았다.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 아쉽지만, 그래도 가끔 종이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괜히 혼자 반갑다. AI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데,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할 날이 오겠지만(이미 왔지만), 그래도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 헌책방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래야 앞으로도 진보초가 굳건할테니.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