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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은 더 이상 안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비교적 많이 혼자 다니기도 했고, 이제는 좋은 것을 봐도, 맛있는 걸 먹어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으면 시시했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 찾다간 뉴욕 한 번 못 가볼 것 같아 결국 비행기표를 샀다.
왜 뉴욕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뉴욕은 뉴욕이니까!”라는 말로 충분하진 않은지 묻고 싶다. 도시 자체가 상징적인 곳.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영화와 책,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 좋아하는 미술 작품이 한 가득 모여 있는 곳. 뉴욕의 베이글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서울에서 먹는 것과 다른지 궁금하기도 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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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앉은 비행기 자리에서 맨해튼과 센트럴파크가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꽤 벅찼다. 뉴욕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 중 좋아하는 작품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TV에서만 보던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니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기에서 내리면 내 캐리어가 부서져 있을지는 몰랐다. 그러니 마냥 좋았지.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게 여행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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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 이용 팁 OMNY에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뉴욕에서도 교통카드처럼 이용할 수 있다. 파손 캐리어 교체 대기할 때 트리플 가이드 교통 완전 정복에서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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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온 김에 혼자일 때 오히려 좋은 미술관과 서점 여행을 왕창 즐기기로 했다. 일정은 공원 산책으로 시작해 미술관 한 곳, 서점 한 곳, 그리고 일찍 들어가긴 아쉬우니 공연 하나! 이렇게 매일 내 취향으로 가득한 여행이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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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가면 여유있지 않을까 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은 오픈 런을 했다. 그래도 하루종일 보면 어느 정도 둘러보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갔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MET에 갈 사람은 꼭 우선순위와 동선을 정하고 오길! 나는 어떤 작품이 있는지 미리 알아보지 않고 와서 꽤 헤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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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헤매다가 우연히 유럽 조각관에 들어선 순간 ‘아 여기 천국이구나’ 싶었지. 이런 천국을 오늘 안에 빠져나갈 순 있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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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워낙 크다는 말을 많이 들어 처음은 가이드 투어로 시작했다. MET에서 운영하는 무료 가이드이고, 테마별로 구체적으로 나뉘어 있어 관심있는 투어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중 하이라이트 투어 첫 번째 시간을 기다렸는데, 가이드 모두 MET에서 교육받았지만, 투어코스는 본인이 직접 짜기 때문에 가이드마다 코스가 다르다고 한다. 그 덕에 혼자였다면 유심히 보지 않았을 작품들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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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명의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는데, 두 명의 가이드 모두 시작할 때 공통으로 소개하는 작품이 베르니니의 조각이었다. 베르니니가 여든 살 무렵한 조각이라고 한다. 가이드 분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며 웃는다. 가이드 분도 은퇴 이후 MET 가이드를 취미로 시작하셨다고 한다. 베르니니의 여든을 뉴욕에서 만날 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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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은 결국 다 보지 못했다. 오픈 시간인 10시에 가서 오후 2시가 지나니 더 이상 걷지 못할 발이 되어있었다. 발이 아프다보니 나중에는 피카소나 칸딘스키 작품들은 거의 곁눈질로만 보고 지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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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가 많은 고흐로 가득 찬 방에서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시관의 작은 방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에서는 드로잉을 곁들여 하나의 큰 전시로 기획할 만한 수준이었고,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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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ET 관람 팁 v 미리 지도를 보고 보고싶은 작품을 정리하길 추천! (사람들이 방황할 때 먼저 가 여유롭게 볼 수 있다)
v 한국 가이드가 있다. 미리 가이드 투어 스케줄을 체크하자. 인터넷과 현장에서 시간이 다를 수 있으니 현장 인포메이션에서 묻거나 현장 안내문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v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특정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 옥상의 풍경이 꽤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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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뉴욕 현대 미술관)는 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진 현대 미술관이다. 그만큼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뉴욕에 가면 MoMA를 들린다. 나도 뉴욕에 가면 MoMA를 꼭 가고 싶었는데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각종 SNS에서 넘쳐나는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MoMA에 가야겠다고 각인되었을 수도 있고.
총 5층 규모인 미술관은 2층은 주로 1980년대 이후, 4층은 1950~1970년대, 5층은 그보다 이전인 1880년대 작품부터 전시되어있다. 아래부터 차곡차곡 올라갈 생각으로 2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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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에서 처음 만난 작품은 조안 미첼 Joan Mitchell의 레이디 버그 Ladybug라는 작품이다. 물감이 흩뿌려진 작품 앞에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데 가이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저 잠깐 시간을 갖고 너를 위해 숨을 골라. 그리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just really take a moment for yourself to just breathe and remember that you’re not alone)”
혼자 여행 온 나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미술관 여행의 문을 열어주니, 나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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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모네의 수련이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일 것이다. 나도 좋아하고 놓칠 수 없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더 시간을 내어 2층을 둘러보며 오디오 가이드를 듣길 권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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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본인, 작가의 자식, 그도 아니면 작가에 대해 연구한 큐레이터가 작품을 소개해 줄 것이다. 다만, 한국어 버전은 작품 수가 많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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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MA 관람 팁 v 전시관 아닌 뒤쪽 엘리베이터 쪽에도 작품이 있다.
v 창문에서 바라보는 바깥 정원 풍경이 좋다. 정원에서 잠시 앉아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정원은 클로즈타임이 다가오면 의자 쪽만 오픈한다.
v 모마 스토어는 2층과 5층, 지하, 건너편 건물에 있는데 각 스토어마다 가지고 있는 재고가 다르다. 사고 싶은 게 없다면 본인이 간 모마 스토어에서 다른 지점에 있는지 확인 요청을 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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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시도 가능하다니!
쿠퍼 휴잇 스미스 소니언 디자인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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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갈까말까 고민했다.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상설 전시는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고 내용이 많지 않아 가볍게 둘러보고 이게 다인가?하고 두리번거리다 내려가려던 차, 보안 직원 분께서 나를 불러세웠다. 위층도 있다고 적극적으로 올라가는 길까지 알려주셔서 따라갔고, 그곳에서 신세계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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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층에서는 기획 전시로 에스 데블린 전을 하고 있었다. 에스 데블린은 무대 디자이너로 다양한 무대를 만들었는데 전시에 들어가기 전 보는 영상이 또 하나의 무대와 다름없었고, 이렇게 전시 또한 무대로 만들어 버리는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전시 시작 전 영상 하나로 매료시키다니! ‘이런 무대가 지금 시대의 조각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전시를 둘러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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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전시는 8월까지 하니 그 사이 뉴욕에 가는 사람들은 꼭! 보길 추천한다. 나중에 다른 후기들을 살펴보니 이 전시가 아니더라도 쿠퍼 휴잇에서 하는 전시는 대체로 평이 좋은 것으로 보아 전시 큐레이션을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품이 아니더라도 카페 공간도 예쁘니 인생샷 찍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혼자가면 사진을 남기긴 어렵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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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퍼 휴잇 관람 팁 v 기념품 판매 숍이 역대급으로 비싸다. 포스터 한 장 75$, 전시 도록은 125$ 😇(하지만 도록은 안 살 수가 없었기에 결국 구매...)
v 기념품 숍 옆 쪽으로 카페가 있는데 공간이 예쁘다. 여행 중 앉아 쉬어가기 좋아 보인다.
v 이곳 하나만 가기에 아쉽다면 근처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Salon 94를 묶어 가는 걸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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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나를 내 나이보다 꽤 어리게 짐작했는데, 아무래도 일주일 동안 좋아하는 것만 보고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표정이 너무 신났나 보다. 출근하는 순간 다시 내 나이로 돌아올 것을 잘 알았지만 여행하는 동안은 너무 행복해서 왜 이제 왔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것을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한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바로 비행기 표를 샀다. 이렇게 또 설렐 준비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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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인혜' 취향이 담긴 공간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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