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별처럼 쏟아지는 곳, 몽골
LETTER. 76
몽골에서 온 편지
10.JUL.2025

꿈같은 황금연휴

지난 5월은 직장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같은 달이었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대체공휴일까지 쓰리콤보가 이어졌는데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보는 모니터 화면에 질린 친구와 나는 별이 쏟아지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는 몽골로 떠나 지친 눈과 심신에 휴식을 주기로 결심했다. 몽골 여행은 대부분 현지 여행사를 끼고 여행하는 경우가 많고, 인원이 많을수록 더 경제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 우리 또한 우여곡절 끝에 각양각색의 배경을 가진 6명이 만났고, 그렇게 몽골로 떠나게 되었다.


아시아의 그랜드캐년, 차강소브라가

남고비 투어의 첫 여행지는 아시아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차강소브라가였다. 아주 오랜 옛날 바닷 속에 잠겨있던 이곳은 오랜 세월 퇴적과 침식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문득 이런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한없이 작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른다.


Nature calls…

긴 시간 이동해야 하는 남고비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자연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다행히도 '자연화장실'은 우려와는 다르게 꽤 만족스러웠다. 바람이 풀을 간지럽히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곳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서른 셋 인생 처음 가져보는 낯선 경험이었다.
손으로 만져야 할 것이 없기에 오히려 위생적인 자연 화장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이번 몽골 여행에는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5월의 눈을 만난 욜링암


여행 전 몽골에 대해 막연히 떠올렸던 이미지들이 있었다. 그런데,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장면을 욜링암에서 마주했다. 우리가 가기 전 날 눈이 내렸다는 이곳은 우리에게 5월의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주었다.
이 곳은 1년 내내 녹지 않는 얼음이 있는 협곡으로도 유명한데, 몇 년 전부터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여름에는 얼음이 녹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1년 내내 녹지 않는 얼음을 넘어, 눈이 소복히 쌓이고 냇물은 꽁꽁 얼어있는 진귀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나의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5월에 눈 쌓인 협곡을 뛰어보다니.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라 매 순간이 더 소중하고 특별했다.


별을 헤는 몽골의 밤

몽골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를 보기 위해 달이 없는 시기를 맞춰 여행한다. 하지만 황금연휴에 맞춰 여행을 온 우리에게 달이 없는 날은 없었다. 비록 머리 위에 은하수는 없었지만 책에서만 봤던 다양한 별자리들을 눈앞에서 보았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그리고 통신과 전기가 귀한 이곳에서 밤이 되면 머리를 맞대고 나누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밤마다 모여 나눈 일과 사랑,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몽골 하늘의 은하수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고민들은 하늘에 별로 박아두고, 우리는 매일 무해한 미소를 발산하며 여행을 즐겼다.


모래언덕 등반, 홍고린엘스

150km가 넘는 어마어마한 길이로 사하라, 아타카마 사막과 함께 세계 3대 사막에 꼽히는 고비사막. 그 고비사막에서 가장 큰 모래언덕인 홍고린엘스는 모래가 바람에 날려 내는 소리가 마치 노래 같아 ‘노래하는 모래언덕’으로도 불린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나는 모래언덕쯤이야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발이 모래에 푹푹 빠져들어 일반 등산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여기에 정상에서 타고 내려올 썰매까지 하나씩 들고 오르니 배로 힘들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래언덕 정상에 올랐고, 정상에서 마셨던 캔맥주는 알코올 인생 13년 만에 경험한 최고의 맥주였다.


몽골의 음식, 술, 그리고 게르


몽골의 전통적 주거형태인 ‘게르’는 유목민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가볍고 분해가 쉬운 형태를 띄고 있다. 여행자들은 완벽한 전통 게르는 아니지만 매일 지역을 옮겨다니며 ‘여행자 게르’라고 불리는 숙박시설에서 지내고는 한다.
하루는 찬물로 샤워를 하기도, 가끔은 벌레와 동침을 하기도, 구멍이 뻥 뚫린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을 ‘여행자 게르’에서 보낸 우리는 이런 곳이라면 일주일도 살겠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유목 생활의 영향으로 몽골 전통식 메뉴에는 육류가 대부분이었고, 특히 양고기가 자주 나왔다. 한국에서도 양고기가 대중화되어 있지만 도축 방식의 차이 때문인지 몽골에서 먹는 양고기는 조금 더 향이 짙은 편인데, 민감한 사람은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끼니라도 거르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에 한국에서 미리 쯔란을 준비해 갔지만, 여행 내내 포장조차 뜯지 않을 만큼 몽골 음식에 완벽히 적응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에 맞는 술이 생각나는 법. 러시아와 인접해서인지 몽골에서는 보드카가 가장 보편적인 술이었다. 매일 밤 게르에 옹기종기 모여 보드카와 주스를 섞어 마시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때 그 보드카의 맛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그저 보드카가 그리운 것일까, 그때의 도란도란했던 순간이 그리운 것일까.


모래바람과의 사투를 벌인 바양작

또 한 번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순간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여행 5일차, 공룡 화석과 공룡알들이 발견되었다는 바양작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날은 정말 태풍 수준의 강한 모래바람이 하루 종일 불었다. 모래바람이 너무 심해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로 온 얼굴을 다 가렸는데 그럼에도 모래바람이 우리의 얼굴에 파고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바람 속에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준 덕에 무사히 트래킹을 할 수 있었다. 서로 도와가며 역경을 극복한 그날. 우리는 여행 5일 만에 처음으로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초원 위의 동물들, 그리고 우리

남고비 여행 중 하루에 4시간, 길게는 6시간가량 드넓은 초원을 달린다. 달리다 보면 말, 양, 소, 심지어 블랙야크까지 정말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몇 백 마리의 양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양떼에 달려가 보았지만 양들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오히려 다가갈수록 더 멀어져만 갔다. 양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양떼 무리의 일부가 되어본 경험은 아주 이색적이었다.
날씨가 화창했던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초원 위의 양이 되어 초원을 달려보기도 했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드넓은 초원 위를 그 어떤 걱정도 없이 순박한 모습으로 뛰어본 순간은 소박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뛰었을까 아쉬울 만큼.


몽골이 내게 준 선물

황홀했던 풍경 아래에서의 감정과 추억은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된다. 주관이 뚜렷해진 서른셋의 몽골여행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용기를 낸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울 만큼 몽골여행은 나에게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될 다양한 황홀경들과 좋은 인연들을 선물해 줬다. 또다시 고민 많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겠지만 힘든 순간마다 떠오를 몽골에서의 황홀경들과 추억의 힘으로 다시 잘 살아가 보자!
🧳 여행자 '현쥐콩'
자연, 여행, 글쓰기, 책, 요리, 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여자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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