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시러 떠난 후쿠오카 2박3일 🍻
by. 20세기 여행자
LETTER. 52
후쿠오카에서 온 편지
08.AUG.2024
어느날 늦은 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첫 대장 내시경을 앞두고 무섭다며. 유경험자인 나는 별거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었고, 다음날 내 친구 뱃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부터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참 많은 것을 함께한 친구지만, 특히 술자리에서 더 잘 맞았던 우리였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여차저차 흘렀고, 5년 만에 완치 판정을받았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한잔하러 어디론가 떠나자고 약속했었는데- 정말 어느새 그날이 다가왔고 우리는 훌쩍 떠나기 좋은 후쿠오카로 2박3일의 여행을 떠났다.
'5년만의 완치 기념, 술 마시러 떠나는 여행', 목적은 명확하고 간단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비교적 저렴한 표와 저렴한 호텔을 예약하고 6살 아들에게는 선의(?)의 거짓말을 남기고- 각자의 배우자와 동반으로 어른 넷이 단출하게 출발했다. 한동안 아이와의 여행을 하다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 어딘가를 가자니, 뭔가 허전할만큼 준비할 게 없었다.
아침 비행기로 일찍 후쿠오카에 도착하고, 아점을 먹기위해 소문난 함박스테이크 맛집에 가기로 했다. 역시나 줄이 길었고, 시간이 금인 우리는 빠르게 손과 발을 움직여 후쿠오카 역에서 10분쯤 떨어진 작은 스시집으로 향했다. 바로 그곳이 내친구의 첫 음주가 시작될 곳이다.(엇... 처음은 아니고 5년만에)
기대했던 나마비루가 없어 아쉬웠지만, 시원한 기린 병맥주를 원샷하기 좋은 작은 잔에 따랐다. 마시기도 전에 취한것 처럼 상기된 얼굴이다. 모두에게 자기를 찍으라며 한껏 흥분해서 쭉 한잔을 하더니, 그냥 늘 먹던 맛이란다 ㅋㅋ 언제 금주를했던건가 싶게 익숙하다고.
가벼운 1차를 마치고, 본격 2차를 찾아 헤맸다. 빠르게 인근 아뮤 플라자 식당가로 이동했다. 꼬치집이 있길래 들어가서 맥주 한잔을 했지만, 영 안주가 별로여서 바로 3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식당가 입구에 있던 오이스터바를 오이스터 매니아인 내가 놓칠리가 없다. 가성비 괜찮은 세트메뉴와 와인 한병을 주문. 친구의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는다! 맥주보다는 와인이라며- 한병은 금세 두병이 된다.
해가 중천인데, 3차까지 마친 우리는 이러다 저녁에 잠들어 버릴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체크인도 하고 한타임 쉬어가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호텔 가는 길 편의점에서 지인 추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 옛날 뽑기 맛도나고, 맛있다! 낮술 마신 취객답게 사진도 찍으며 느릿느릿 호텔로 들어갔다.
저녁은 = 4차는 후쿠오카의 명물(?) 모츠나베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사케와 일본 소주를 시켜 조용히 마셨다. 사이드로 먹었던 멘타이코 밥까지 싹싹 먹고 나왔다. 배가 불렀지만, 우리에겐 5차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바로 오징어회! 하지만 예약없이 오징어회를 파는 술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배도 부른김에 나카스 강 주변을 중심으로 찾아 헤매다, 드디어 발견. 대기가 있었지만.. (점심과는 다르게) 얌전히 기다렸다.
힘들게 찾은만큼 대단한 오징어를 만났고 또 각자의 취향대로 한잔했다. 그렇게 목표를 이루고 호텔로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술이 문제지.
우리는 어쩌다 6차의 문턱을 밟았다. 흡연도 가능한 시끌벅적한 술집. 타파스처럼 간단한 안주류 들이 있었고 이것저것 시켜놓고 맥주와 하이볼을 마셨다.
다음날, 일단 커피가 간절했다.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일본 필수코스인 돈키호테에 산책삼아 걸어가리로 했다. 가는 길 곳곳의 쇼핑 스팟들을 기웃거리며 손에 쇼핑백이 하나씩 늘어간다.
돈키호테 쇼핑까지 마치고나니, 언제 시간이 흐른건지 미리 찾아둔 식당 브레이크 타임이 가까워겼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이동, 10분 정도 남겨두고 가까스로 도착했다. 늦은 점심 겸 7차를 위해 선택한 메뉴는 어제 먹지 못한 함박스테이크. 유명한 맛집은 아니었지만 소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쇼핑한 것들을 호텔에 두고 이제 마지막 밤을 즐길 차례다. 둘째 날은 정말 정신차려 보니 저녁이 되어 있는 기분이랄까. 8차는 야끼니쿠다. 원래 가려던 곳에 못가게 되어, 근처 보는 야끼니쿠집에 그냥 들어갔는데. 친절하고 맛있고 비쌌다. 일본소주에 고기고기. 원래도 소주를 즐겨마시던 친구는 역시- 자기는 소주가 좋다며 물개박수를 쳤다. (어제는 와인이 좋다더니.)
시간이 없다. 9차는 어제 실패했던 꼬치를 먹으러 향했다. 닭껍질 꼬치가 유명하다더니, 역시 맛있다. 10차는 채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음 술집을 찾는다. 마지막은 해장용 라멘과 교자로 선택했다. 하이볼과 함께 마지막 한잔을!
마지막이었다면 좋았을텐데.. 호텔로 가는길, 지나치지 못하고 홀리듯 근처 뮤직바에 들어갔다. 여기서 얼마나 마시고, 무엇을 했는지는 글쎄다. 넷중 가장 술이 약한 나는 알 수가 없다. 몇장의 사진만 남아있을 뿐. 다음날 이른 아침, 엄청난 숙취와 함께 우리의 2박3일은 마무리되었다. 5년 전 그날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잘 극복한 친구가 대견하고, 5년동안 잘 관리한 친구가 기특했다. 그리고 살아가며 언제든 마주하게 될 어려운 순간들을 함께 극복해 나갈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을 마무리했다. (숙취와 함께) 출발 전, 예전처럼 음주 생활을 즐길 수 없는 친구는 해외 여행에 갔을 때만 한잔씩 하겠다고 선언 했었다. 돌아오는 길, 올해 안에 한번 더 떠나자며.. 홍콩은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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