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의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
by. 만쥬
LETTER. 34
인도에서 온 편지
30.NOV.2023

아그라에 살고 있어요.

인도가 좋아서 몇 번의 인도 여행을 마치고 모 대학 인도어과에 입학한 나. 기어이 올해 9월 인도 정부 장학생 신분으로 다시 인도에 오게 되었다. 내가 살게 된 곳은 북인도의 아그라라는 도시. 이 아그라에서 유명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영원한 사랑의 상징 타지마할이다.
아그라의 매캐한 공기, 귀를 찢을 듯한 소음들, 끝나지 않는 흥정과 바가지 속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타지마할의 존재만으로도 왠지 용서가 되는 느낌이다.

한복 입고 타지마할

아그라에 살게 되고 나서 찾은 타지마할은 조금 달랐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국의 전통 의상으로 패션쇼가 열린다. 나와 내 동기도 생활 한복을 챙겨 왔고, 우리와 친한 태국 친구들도 태국 전통 옷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 같이 전통 의상을 입고 타지마할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지인 요금은 현지인만

10월 초의 어느 맑은 날 아침,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숙사를 나섰다. 인도는 현지인과 외국인 사이 관광지 입장 요금 차이가 열 배에서 스무 배 가까이 나는 편이다. 우리는 인도에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 요금을 내고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이 방법이 통하는 관광지가 몇 군데 있다.), 큰 오산이었다. 온라인에서 결제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타지마할 입장 티켓을 보여주고 힌디어로 아무리 따져 봐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외국인 티켓을 끊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날은 덥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1,100루피의 거금을 들여 입장권을 새로 끊어야만 했다.

타지마할에도 시즌이 있다

실랑이에 지친 것도 잠깐, 우리는 영롱한 순백의 자태를 뽐내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었다. 본격적인 스모그 철이 시작되기 전 푸른빛이 남아 있는 하늘 아래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11월 이후엔 미세먼지 수치가 치솟으며 타지마할도 희뿌연 안갯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일이 잦다.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라면 다행이련만, 북인도 지역의 대기오염은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타지마할의 손상을 야기하는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미세먼지는 생명뿐만 아니라 타지마할에게도 유해하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서운한 것

화려한 태국 옷 덕분에 인기가 폭발했던 태국 친구들에 비해 사진을 찍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느꼈던 나. 인도에 오래 있다 보면 별다른 노력 없이 얻어지는 관심에 익숙해지게 된다. 몇 년 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관광지에서 외국인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내 미소의 7할 이상은 인도에서 다듬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는 한류의 영향으로 단박에 한국인임을 알아보며 호감을 표하는 여자아이들이 많아졌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신나서 최대한 성의를 다해 사진을 찍어주곤 한다.

공짜라서 더 멋진 타지마할의 일몰

타지마할 근처에 일몰을 볼 만한 곳이 없을까 해서 구글맵을 열심히 찾아 한 장소를 발견했다. 타지마할 동측 출입문에서 야무나 강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원래는 보트를 타고 일몰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몬순이 끝난 이후에는 보트가 뜰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강변에서 감상하는 노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야무나 강을 내려다보는 흰 타지마할과 불타는 태양의 조화란. 제일 좋았던 건 입장료가 따로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나 타지마할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니!

타지마할, 무굴 제국의 대표적 유산

죽은 왕비를 잊지 못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낸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 건축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타지마할을 비롯하여 델리의 레드 포트, 자마 마스지드와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탄생했다. 비록 현재 인도에서 극우 힌두주의 움직임이 늘어나며 이슬람 왕조이자 외부에서 들어와 터를 잡은 무굴 왕조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해도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뿐만 아니라 인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임이 틀림없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얼마 전에는 아그라 포트에 다녀왔다. 현지인들은 ‘랄 낄라(붉은 성)’로 부르는 요새로,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 언뜻 보면 델리의 레드 포트와도 비슷해 보인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 포트에 갇혀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했다.
아련한 음악을 들으며 멀리 서 있는 타지마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수백 년 전의 샤자한에 빙의된 것만 같았다. 스모그에 휩싸여 아른거리는 타지마할의 모습조차 애처로운 감성을 더해 주었달까.

어쨌든 우리 동네

타지마할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마음대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듣곤 한다. 지금까지 일고여덟 번쯤 타지마할을 봤으니,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남들과 비교해서 많이 보긴 했을지도. 동네 마실 가듯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치는 곳. 그런 곳이 무려 타지마할이라는 건 새삼 큰 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한 번 더 타지마할을 다녀와야겠다.



🧳 여행자 '만쥬'
남아시아를 편애하는 여행자. 늘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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