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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해외 바이어들과 직접 미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1인 항공권을 지원해 주는 사업에 우리 회사가 선정이 되면 ‘대리님이 가셔야 돼요’라고. 솔직히 안 될 거라 생각해서(사장님, 죄송) 코웃음 치며 확정되면 다시 말씀하시라 했건만. 이게 웬걸, 선정 업체 10개사 안에 당당하게 들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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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해진 출장지는 싱가포르. 문화‧예술 탐방이나 유적지를 사랑하는 나는 깨끗하고 잘 사는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는 지금껏 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2박 3일의 출장 일정 내내,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는 바이어 미팅 일정으로 꽉 차 있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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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도, 관광할 여유도 없었지만 나는 그나마 허락된 시간이라도 알차게 싱가포르를 즐겨 보기로 했다. 근무 중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미식을 즐기는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에 빙의해 특히 음식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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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일정을 시작하기 전, ‘야쿤 카야 토스트’를 맛보기 위해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내가 간 지점은 조금 썰렁한 쇼핑몰 안에 있었는데, 이 식당 앞에만 현지인과 관광객이 섞여 줄을 서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세트 메뉴를 선택. 재료도 비주얼도 무척이나 평범해 보였는데, 입에 넣는 순간 이거 뭔데 이렇게 맛있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탁하고 진해 보이는 커피도 달달함이 아주 녹진했다. 현지인들은 아침 식사로 즐긴다고 하는데(그래서 오픈 시간도 매우 이르다) 내 입맛에는 당 충전이 필요한 늦은 오후에 더 생각날 맛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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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들과의 미팅을 후딱 끝내고 나는 다들 입을 모아 추천해 준 식당으로 향했다. 혼자였기 때문에 여러 메뉴를 시키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대표 메뉴인 바쿠테(돼지 갈비탕)만 주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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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한술 뜨는 순간, 띠용! 외국 국물 요리에 감동받기 쉽지 않은데, 한국인의 소울을 울리는 깊은 맛이 놀라웠다.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아 밥과 삼겹살 & 막창 조림까지 추가로 시켰다. 막창 조림은 잡내가 날 수도 있어 살짝 긴장했지만 너무나 깔끔했고 완벽한 밥반찬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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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때쯤 되어서야 겨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어두워져야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내가 머문 중앙 지역(Central Region)이 싱가포르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인 데다, 고도가 평탄해서 ‘마리나 베이 샌즈’가 어디서든 살짝살짝 보이는 게 그 화려한 분위기에 한몫한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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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한 야경에 반해 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첫날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매일 저녁 7시 45분, 8시 45분에 진행되는 조명쇼도 꼭 보고 싶었다. 쇼가 시작되자마자 소나기가 지나갔지만, 흥겨운 음악에 맞춰 색색으로 빛나는 25~50m 높이의 슈퍼트리들이 격하게 환대해 주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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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마지막 날이 됐다. 저녁에 어디를 가 볼까 찾다가 두 장소가 눈에 띄었다. 둘 다 내 취향에 맞게 최소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간들이다. 바로 ‘라우 파 삿’과 ‘롱 바’. 19세기에 지어진 랜드마크 ‘라우 파 삿’ 한켠에는 노점상들이 늘어선 사테 거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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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땡하면 3차로나 되는 넓은 차도를 가로막고 테이블과 의자들이 설치된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사테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였지만 꿋꿋하게 맛과 분위기를 즐겼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뾰족한 빌딩숲 한가운데에, 낮게 자리 잡고 사테 굽는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는 라우 파 삿의 풍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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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선 기네스를, 포르투갈에 가면 포트 와인을 맛봐야 하는 것처럼, 나라 이름이 붙은 술이 있다는데 애주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싱가포르 슬링이 처음 개발된 곳인 ‘롱 바’는 싱가포르의 국보급 호텔인 래플스 호텔 안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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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내부는 1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져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다. 무료 안주로 제공되는 땅콩을 먹고 그 껍데기는 그냥 바닥에 버리는 독특한 전통도 있다. 분홍빛의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은 과일 주스처럼 상큼하고 달달하면서도 살짝 도수가 높은 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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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큼 빡빡했던 싱가포르 출장 일정이 모두 끝났다. 배는 부르지만, 낮의 싱가포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 번엔 꼭 관광객으로, 누군가와 함께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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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윤대리' 책을 만들고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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