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15일간의 극한 여행 🏔
by. 이빵순
LETTER. 07
네팔에서 온 편지
17.NOV.2022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EBC트래킹

끝없이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설경
2013년, 23살이 되던 해에 1년 남짓 만난 자칭 ‘여행 고수’ 남자친구를 덥석 믿고 3개월간의 해외여행을 떠났다. 태국-네팔-인도에 각 1개월 정도씩 머물렀는데 그 중 메인은 히말라야 EBC 트래킹이었다.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봉우리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베이스캠프(Everest Base Camp) 근처를 찍고 돌아오는 코스로,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정보에 따르면 길 자체는 한라산, 지리산보다 훨씬 쉽다길래 “한번 가보지 뭐!” 가벼운 마음으로 평소 입는 겨울점퍼에 워터프루프 등산화만 하나 챙겨 떠났다.
15인승 비행기를 타고 루클라(2,800m)에 도착해 9일에 걸쳐 EBC 근처 고락쉡(5,140m)까지 오른 다음 다시 6일에 걸쳐 루클라로 내려오는 총 14박 15일간의 일정이었다.

트래킹 2일차, 죽음의 코스

초반 코스 '남체'
트래킹 2일차. 몬조(2,830m)에서 아주 가파른 길을 따라 약 600m 위 남체(3,440m)로 올랐던 날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었다.
14일 치 짐을 메고 지그재그로 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자니 어깨는 아프고 종아리는 땅기고 정신은 아득해지고. 떨어지는 기온에 체온 뺏길까 털모자를 눌러쓴 탓에 차가운 땀까지 흘리며 정말 죽을 것 같은 4시간을 보낸 후 겨우 남체에 도착했다. 거의 다 올랐을 무렵 이 길이 전체 코스 중 가장 힘든 길이었다는 블로그 후기를 기억해냈을 땐 정말 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같은 코스가 또 있었으면 그 길로 당장 트래킹을 포기했을 테니까.

오르고 또 오르는 그 길을 내가?!

비현실적인 설산 풍경
롯지(산장)에 드디어 짐을 풀고 뜨끈한 수프로 몸을 녹인 뒤 샤워(이때는 몰랐지만 사실상 트래킹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까지 하고 침낭에 두꺼운 담요까지 덮고 누웠을 때, 내가 느낀 그 낯선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무거운 가방을 진 남자친구
짐을 진 당나귀들
어릴 때부터 지구력도 바닥인데다 조금만 뛰면 숨을 헥헥 거리며 벌건 얼굴로 현기증을 호소하던 나인데, 걷고 걸으며 오르고 또 오르는 그 길을 내가 왔다니! 고개만 들면 보이는 비현실적으로 멋진 설산 덕분일까? 더 무거운 가방을 나눠 멘 남자친구와 함께여서일까?

어느새, 슬쩍 나의 한계를 넘어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오를 땐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당연히 했을 법한 불평도, 후회도 없었다. 불타는 열정이나 승부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돌계단
육체는 고통스러웠지만, 눈 앞에 차례차례 등장하는 돌계단을 어쨌든 밟아나갔더니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나도 모르게 슬쩍 나의 한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비장함이나 호들갑 없이 이룬 작은 성공에 얼떨떨하면서도 내가 몰랐던 나의 꽤 멋진 모습이 낯설고 뿌듯했다. 살면서 종종 이날 밤의 그 느낌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는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트래킹 6일 차, 남자친구와 가방을 바꿨다

중반 코스 중 만난 마을
트래킹 6일 차가 지나면서는 몸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데 마음이 힘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가방을 바꿔 메준 날이었다. 그동안 더 무거운 가방을 내내 들었으니 이제는 내가 좀 들마 하며 흔쾌히 가방을 바꿔 멘 후 조금 걷기 시작했을 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앞서 저 멀리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짐의 대부분은 그의 카메라 짐. 나는 더 무거운 가방을 메기로 한 저를 위해 얇은 책 한 권도 안넣었는데, 그 많은 짐을 꾸역꾸역 들고 와놓고 컨디션 안 좋대서 좀 들어주니 저 혼자 저렇게 쌩 가버린다고?

비관이 감탄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안고 그날 묵을 롯지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앉으니 ‘여기 올라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도 점점 익숙해지고, 풍경도 갈수록 돌 또는 눈으로 단순해지는데 눈에 젖어 축축한 신발과 양말, 겁 없이 길 막는 당나귀, 차갑고 퀴퀴한 담요, 천장을 달리는 쥐, 끝없는 두통, 희박한 산소, 그리고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나.
아마다블람, 히말라야 산맥 동쪽 봉우리 6,812m
한참을 그렇게 비관하다, 바람이나 쐬러 밖에 나갔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길을 꺾어 돌자마자 석양에 비쳐 붉게 물든 아마다블람이 보였다. “와- 진짜 멋지다” 하고 감탄하는 순간 방금의 짜증과 비관을 모두 잊었다. 내 평생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 하하! 하고선 말아버렸다. 그때 남자친구와 어떻게 풀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와 지금 10년째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 으로부터

길에서 만난 아이들
14박 15일의 히말라야를 떠올릴 때마다 결국 이르게 되는 생각은 트래킹을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모든 힘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 히말라야 트래킹 후기와 함께 깨알 꿀팁을 아낌없이 선사한 블로거와 코스 처음부터 끝까지 갈림길 중 옳은 길을 빨간 페인트로 표기해둔 누군가와 같은 얼굴 없는 천사들. 그리고 길에서 직접 만난 이들이다.
정말 친절했던 롯지의 가족들
포터 없이 길을 헤매던 우리를 거두어 본인의 포터에게 함께 인솔을 부탁한 한국인 아저씨, 우리를 자신의 누이 집 저녁식사에 초대해준 현지 포터, 내려오는 길에 후들거리는 내 다리를 보고 자기 스틱을 선뜻 빌려준 일본 청년, 눈으로 축축해진 내 신발을 밤새 불을 때 말려준 롯지 주인 부부 등 트래킹 내내 도움과 감동을 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따시델레” 그 순간이 참 따뜻했다

최정상, 칼라파타르에서 본 에베레스트
그 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이상하게도 잠깐 스쳐 지나간 어느 할머니다. 고산병 때문에 계속 자는 남자친구를 롯지에 두고 혼자서 산책을 나갔다가 아주 좁은 길에서 현지 할머니 한 분을 마주쳤는데, 정말 환히 웃으며 “따시델레”하고 다정하게 인사해주셨다(’따시델레’는 티벳 인사말이다. 히말라야 높은 지대에는 거의 티벳 사람들이 산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따시델레” 했더니 할머니는 여전히 미소 띤 채 나를 천천히 지나쳐 갔다. 그 순간이 참 따뜻했고 그래서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미소와 다정한 인사로 인해 내가 여행객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냥 한 사람으로 마주하고 싶다

현지 포터 누이의 집에 초대받은 날
여행을 떠나면 여행객으로서, 즉 외부인으로서 생활하게 되는데 그 구별됨과 이질감이 여행의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객 보다는 그냥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만날 때 서로 더 크고 따뜻한 힘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시 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이 나에게 준 힘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지탱하고 있다. 다른 여행지에서도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나 또한 그들에게 따뜻한 기억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 여행자 '이빵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나누는 삶을 꿈꾸는 서비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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