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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인도 여행을 마치고 스리랑카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좋았다.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하고, 입국수속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환전을 하려는 순간, 가방 안에 잘 넣어두었던 달러가 보이지 않는다. 인도 공항에서 도둑맞은 것이다. 충격에 휩싸여 한 시간을 공항에서 허탈하게 앉아있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벌써 새벽 두시 반. 툭툭을 타고 콜롬보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시작부터 아껴야하는 처지가 되어 배낭을 메고 로컬버스를 타러 걷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걷는 중에 비까지 왔고 새벽 네시가 되어서야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의 스리랑카 여행은 이렇게 처량하게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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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하고 처음 목적지로 잡은 곳은 시기리야의 라이언 락과 피두랑갈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시기리야 라이언 락은 스리랑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랜드마크이자 관광지이다. 내 계획은 해 질 녘에 라이언 락을 오르고, 다음날 아침에 피두랑갈라에 올라 라이언 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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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시간에 늦을까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라이언 락으로 뛰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꽤 멀었다. 근데 마침 내 옆을 지나던 오토바이가 멈춰 세우더니 타라고 손짓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도에서의 호객행위와 사기행각에 진절머리가 나있던 터라 이번엔 얼마를 달라 할까, 반사적으로 의심부터 들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일몰 시간 탓에 고민할 겨를이 없었고 나는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런데 오토바이 운전자는 목적지에 나를 내려주고 매표소 위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더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씩 웃고는 그냥 가버렸다. 경황이 없어 자세히 생각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만난 스리랑카 현지인의 대가 없는 호의였다. 이 이후로 만난 스리랑카인들은 모두가 친절했고, 어느샌가 나도 여유를 되찾고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걸핏하면 요금을 높게 부르는 툭툭 기사들은 언제나 조심해야 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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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리야 도착 후 일몰시간에 맞춰 오른 라이언락은 구름에 가려 온전한 일몰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화 속 풍경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탁 트여있는 울창한 숲의 모습과 하늘을 가르는 지평선은 가슴까지 뻥 뚫리는 듯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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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출 시간에 맞춰 오른 피두랑갈라는 오르는 길이 좀 험했지만 라이언락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피두랑갈라 바위 아무 곳이나 누워 바람을 맞으며 일출을 보는 순간은 신선놀음을 하는 듯 했다. 백번 말보다 한번 보는게 낫다는 말을 온전히 체감했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쉬워하며 다음 번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이 곳에 데리러 오리라 다짐한 순간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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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리야 여행 팁 피두랑갈라에 비해 라이언락의 입장료가 비싸기 때문에 피두랑갈라만 오르는 여행자들이 많지만, 라이언락도 꼭 올라가봤으면 좋겠다. 피두랑갈라에 오를 때는 마실거리를 챙겨야 한다. 물을 구할 곳이 없기 때문에 목이 마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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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에서 기차를 빼 놓을 수는 없다. 스리랑카는 세상에서 기찻길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중 엘라에서 찾아갈 수 있는 나인아치 브릿지는 무려 1921년 영국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져 현재에도 기찻길로 이용되고 있는, 스리랑카인들의 자긍심이 담겨 있는 의미있고 역사적인 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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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는 방법은 조금 아날로그 적이다. 기차 출발 한시간 전부터 매표소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30분, 1시간은 기본으로 연착된다. 2등석을 예매했지만 자리가 없어 3등석으로 밀려나는가 하면 3등석마저 자리가 없어 기차 문에 걸터앉아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한 번은 9시 기차를 오후 1시가 되어서야 탄 적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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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도 없는 기차는 사람들로 가득 차 덥지만 기차에 창문들이 있어 이내 기차가 달리면 금세 시원해진다. 또 기차에 파는 간식들을 사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식들을 사 먹으며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물론 연착으로 인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계산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급할거 없잖아, 천천히, 천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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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 기차여행 팁 2등석 사지말고, 3등석으로 구매하자. 어차피 문에 앉아서 가게 될 것이다. 캔디에서 나누오아역 까지는 오른쪽 창가, 나누오야부터 엘라역 까지는 왼쪽 창가에 앉으면 좀 더 경치가 좋다.
+나인아치브릿지는 Srilanka Train 어플을 설치하면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연착이 빈번하니 참고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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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멋진 정글뷰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스리랑카의 국립공원에서는 물론 일반 도로에서도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만날 수 있고 바다에서는 거북이와 고래도 만날 수 있다. 홍차의 나라답게 산으로 올라가면 향 좋은 홍차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실론티는 사실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차에 표기되는 브랜드이고, 일본의 기린음료, 립톤과 같은 제품들도 모두 스리랑카 차를 이용해 만들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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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섬나라인 만큼 다양하고 멋진 해변까지 보유하고 있어 스쿠버다이빙과 서핑 같은 액티비티의 성지이기도 하다. 스리랑카는 푸른 산, 푸른 차 밭, 푸른 해변 모두를 가지고 있는 푸른 곳이다. 한국의 바다에서 세 번이나 실패한 내가 처음으로 서핑에 성공한 곳도 바로 스리랑카의 아루감베이 해변이다. 서핑을 하다 엘리펀트 락에서 마주한 일몰 또한 잊지 못할만큼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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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뿐만이 아니다. 각지에는 보기만해도 아찔한 멋진 폭포들이 있는데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들어가 즐기고, 수영도 하며 더위를 날릴 수 있다. 엘라에 있는 Nildiya Pokuna 라는 동굴도 빼놓을 수 없다. 800m 깊이의 동굴을 탐험하듯 내려가면 자연이 만든 에메랄드 빛 수영장을 만날 수 있다. 빛 한 점 없는 동굴에서 가이드가 들고 있는 랜턴에만 의존해 수영해야 하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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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는 인도 바로 아래 눈물모양으로 생긴 나라라고 해서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리는데, 내가 여행하며 만난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보석, 동양의 진주라는 말이 더 가슴 깊이 와 닿는 나라였다. 스리랑카 여행의 시작은 돈을 잃어버려서, 또 비와 함께여서 처량했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툭툭 안에서 만난 비는 떠나기 싫은 내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같은 비도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다니, 새삼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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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나고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며 느꼈다. 나, 이렇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사진 속에 나는 스리랑카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매 순간 즐거움을 느꼈고 매 순간 웃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고장나 길에 멈춰서고, 기차가 네시간 동안 늦어져도 말이다. “You Happy, I am Happy!” 짧고도 강렬한 스리랑카 친구의 멋진 말.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다는 단순한 말에 전혀 의구심이 들지 않고 마음이 울리던 그 순간. 이렇게 나만 또 배워가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찡했다.
멋진 산과 바다는 물론 길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원숭이와 사슴, 야생 코끼리들까지 웅장한 대자연을 품고 있는 스리랑카. 거기에 그만큼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들까지. 여행의 끝에서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좀 더 여유있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스리랑카는 그런 나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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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안웨이' 여행과 동물 그리고 커피를 애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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