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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출발 전에 뭐라도 머리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메시와 에비타의 나라 정도로 기억하던 아르헨티나를 꼭 가야만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탱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흠뻑 빠진 저자의 이야기는 남미 여행의 일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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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곳 사람들의 탱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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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영화 ‘해피투게더'와 피아졸라 음악의 영향으로, 조금은 우울하고 묵직한 색채의 이미지로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예상과는 달리, 아주 쨍-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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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부촌으로 불리는 팔레르모 지역에 비앤비로 숙소를 잡고, 동네 분위기를 익히며 잔뜩 먹을 것들을 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사도가( 소고기 바베큐) 아주 맛있고, 와인이 저렴하며, 멋진 레스토랑과 넓은 공원이 많다. 다시 말하면 쭉- 살아도 좋겠다 싶은 그런 곳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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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란 수식어를 가진 '엘 아테네오'를 시작으로 작은 동네 곳곳에서도 쉽게 서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도시보다도 서점이 많은 곳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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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인이 많았던 밀롱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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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첫날, 거한 저녁을 먹고 택시로 이동하는데 기사님이 밀롱가 하나를 추천해주셨다. 월요일은 입장료 무료라는 꿀팁과 함께. 10시가 좀 넘은 월요일 밤, 주소 하나 들고 물어물어 밀롱가를 찾았다. 이미 테이블은 꽉 차 있었다. 공연 시작 전, 밀롱가를 찾은 손님들이 자유롭게 추는 탱고. 그게 내가 본, 첫 탱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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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사람들의 실력이야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진지한 눈빛만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이후 곧 공연이 시작되었고, 무료 공연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공연도 물론 좋았지만, 그곳 분위기의 8할은 진심으로 탱고를 즐기는 손님들 덕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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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딱딱한 건물 지하에 밀롱가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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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몸치에 박치다. 거기에 부끄러움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행들을 꼬드겨 탱고를 배워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의 밀롱가들을 알아보고, 1인당 60페소에 탱고와 살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저녁 탱고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니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탱고 연습들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현란한 발놀림을 보여주었는데, 지난밤 밀롱가의 사람들보다는 스킬이 더 좋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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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선생님들이 와서 반을 나눈다. 당연히 우린 비기너 클래스. 남녀를 나눠 줄을 세우고, 기본 스텝을 알려준다. 그러고는 파트너를 바꿔가며 연습을 한다. 한없이 촌스러운 나는 뻘쭘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3-4번째쯤 만난 파트너는.. ‘내 눈을 바라보고, 편안히 따라와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더 눈을 보기 어려웠지만, 고마웠다.) 같이 간 일행들도 곧잘 따라 스텝을 밟는 듯했다. 나만 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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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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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표정 |
| | 진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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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헤매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어떤 아저씨가 나를 대열에서 뺀다.(관계자인지 그냥 손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천천히 다시 알려주신다. 힘들었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춤을 춰 본다.(춤이라 할 수 있는가) 난 다행히도 그분 덕에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레슨도 받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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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도시인 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유서 깊은 탱고 쇼를 볼 수 있는 공연장이 많이 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큰맘 먹고 식사까지 포함된 공연을 예약했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제법 큰 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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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맘 먹고, 예약한 탱고 클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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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엔젤리노스'라는 곳이었는데, 입구부터 번쩍번쩍하다. 예약된 식사를 하고, 한 시간 남짓의 화려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악도 웅장하고 무대도 화려했지만, 쇼 중심의 프로그램에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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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란하다-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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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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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밀롱가에서 보았던, 서로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과 춤 속에 녹아있는 댄서들의 감정들을 엿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밀롱가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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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지난번보다 유명하다는 탱고 클럽, ‘카를로스 가르델'에도 가 보았지만, 여전히 아쉬웠다. 물론, 이건 정형화된 것보다는 날것의 느낌을 선호하는 나의 주관적 취향이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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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텔모 시장에서 마주친 댄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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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무심코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탱고 음악과 춤은 이 도시에 깔린 BGM처럼 어디에서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여행자 필수 코스 산 텔모 시장에서는 곳곳에 춤판이 벌어진다. 시장 중심에서 울려 퍼지는 버스킹 연주자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노인들, 작은 광장에 모여서 자유롭게 탱고를 즐기는 현지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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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카(탱고가 처음 시작한 지역)의 레스토랑 곳곳에서 울리는 탱고 연주와 춤. 걸음을 멈추게 하는 대형 그래피티에도, 골목 전봇대를 장식한 작은 그림 속에도 탱고가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잠시 머물고 가는 여행자의 낭만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추운 계절이 오면, 찐득한 말벡 레드와인 한잔과(한 병과) 피아졸라의 탱고를 들으며- 조금 더 오래 여행자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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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여행자 여행이 주는 힘을 믿습니다. 늘 여행을 품고 살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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