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 💃🏽 🇦🇷
by. 20세기 여행자
LETTER. 10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편지
29.DEC.2022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출발 전에 뭐라도 머리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메시와 에비타의 나라 정도로 기억하던 아르헨티나를 꼭 가야만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탱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흠뻑 빠진 저자의 이야기는 남미 여행의 일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곳 사람들의 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영화 ‘해피투게더'와 피아졸라 음악의 영향으로, 조금은 우울하고 묵직한 색채의 이미지로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예상과는 달리, 아주 쨍- 했다.
비교적 부촌으로 불리는 팔레르모 지역에 비앤비로 숙소를 잡고, 동네 분위기를 익히며 잔뜩 먹을 것들을 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사도가( 소고기 바베큐) 아주 맛있고, 와인이 저렴하며, 멋진 레스토랑과 넓은 공원이 많다. 다시 말하면 쭉- 살아도 좋겠다 싶은 그런 곳이었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 만든 '엘 아테네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란 수식어를 가진 '엘 아테네오'를 시작으로 작은 동네 곳곳에서도 쉽게 서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도시보다도 서점이 많은 곳이었다.

탱고를 만나다

현지인이 많았던 밀롱가
도착한 첫날, 거한 저녁을 먹고 택시로 이동하는데 기사님이 밀롱가 하나를 추천해주셨다. 월요일은 입장료 무료라는 꿀팁과 함께. 10시가 좀 넘은 월요일 밤, 주소 하나 들고 물어물어 밀롱가를 찾았다. 이미 테이블은 꽉 차 있었다. 공연 시작 전, 밀롱가를 찾은 손님들이 자유롭게 추는 탱고. 그게 내가 본, 첫 탱고였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춤추는 사람들의 실력이야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진지한 눈빛만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이후 곧 공연이 시작되었고, 무료 공연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공연도 물론 좋았지만, 그곳 분위기의 8할은 진심으로 탱고를 즐기는 손님들 덕분이었다.

탱고를 배우다

이토록 딱딱한 건물 지하에 밀롱가라니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몸치에 박치다. 거기에 부끄러움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행들을 꼬드겨 탱고를 배워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의 밀롱가들을 알아보고, 1인당 60페소에 탱고와 살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저녁 탱고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니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탱고 연습들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현란한 발놀림을 보여주었는데, 지난밤 밀롱가의 사람들보다는 스킬이 더 좋아 보였다.
잠시 후 선생님들이 와서 반을 나눈다. 당연히 우린 비기너 클래스. 남녀를 나눠 줄을 세우고, 기본 스텝을 알려준다. 그러고는 파트너를 바꿔가며 연습을 한다. 한없이 촌스러운 나는 뻘쭘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3-4번째쯤 만난 파트너는.. ‘내 눈을 바라보고, 편안히 따라와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더 눈을 보기 어려웠지만, 고마웠다.) 같이 간 일행들도 곧잘 따라 스텝을 밟는 듯했다. 나만 빼고.
눈으로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
아저씨 표정
진지하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어떤 아저씨가 나를 대열에서 뺀다.(관계자인지 그냥 손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천천히 다시 알려주신다. 힘들었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춤을 춰 본다.(춤이라 할 수 있는가) 난 다행히도 그분 덕에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레슨도 받을 수 있었다.

탱고를 보다


탱고의 도시인 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유서 깊은 탱고 쇼를 볼 수 있는 공연장이 많이 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큰맘 먹고 식사까지 포함된 공연을 예약했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제법 큰 돈이었다)
큰맘 먹고, 예약한 탱고 클럽
‘카페 엔젤리노스'라는 곳이었는데, 입구부터 번쩍번쩍하다. 예약된 식사를 하고, 한 시간 남짓의 화려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악도 웅장하고 무대도 화려했지만, 쇼 중심의 프로그램에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현란하다- 멋지다-!
아름답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우리가 밀롱가에서 보았던, 서로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과 춤 속에 녹아있는 댄서들의 감정들을 엿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밀롱가로 향했다.
이후, 지난번보다 유명하다는 탱고 클럽, ‘카를로스 가르델'에도 가 보았지만, 여전히 아쉬웠다. 물론, 이건 정형화된 것보다는 날것의 느낌을 선호하는 나의 주관적 취향이긴 하다.

탱고는 어디에도 있었다

산 텔모 시장에서 마주친 댄서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무심코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탱고 음악과 춤은 이 도시에 깔린 BGM처럼 어디에서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여행자 필수 코스 산 텔모 시장에서는 곳곳에 춤판이 벌어진다. 시장 중심에서 울려 퍼지는 버스킹 연주자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노인들, 작은 광장에 모여서 자유롭게 탱고를 즐기는 현지인들.
라보카 레스토랑에서
라보카(탱고가 처음 시작한 지역)의 레스토랑 곳곳에서 울리는 탱고 연주와 춤. 걸음을 멈추게 하는 대형 그래피티에도, 골목 전봇대를 장식한 작은 그림 속에도 탱고가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잠시 머물고 가는 여행자의 낭만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추운 계절이 오면, 찐득한 말벡 레드와인 한잔과(한 병과) 피아졸라의 탱고를 들으며- 조금 더 오래 여행자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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