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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해놓은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 느껴진 느지막한 봄. 두 달간 휴직을 하고 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회사를 쉴 수만 있다면 마음껏 여행하겠다고 생각해왔건만 현실이 되고 보니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러다 눈 깜짝할 사이 출근 일이 다가올 것 같아, 부랴부랴 끊은 치앙마이행 비행기 티켓. 남들은 한 달씩이나 머문다는 그곳에서 홀로 일주일을 살아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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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앙마이 숙소 '반 하니바'의 발코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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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두 번째 여행이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있던 5년 전에도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 곳이었기에 이번에도 마음 편히 여행을 준비했다. 즉, 이번에도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주제에 막상 여행 날이 다가오자, 옛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것처럼 기대되고 설레었다. 그곳은 여전할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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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치앙마이의 가장 큰 변화는 결제 시스템이었다. 과거에는 오직 현금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았는데 야시장에서도, 소박한 로컬 마사지샵에서도 GNL QR결제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곳은 여전히 많은 반면, 어딜 가든 QR코드는 볼 수 있어서 치앙마이에서의 QR결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여겨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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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제 방법 보다 적응이 어려운 건 다름아닌 네트워크의 속도였다. 국내 은행 앱을 열고 한참을 기다려야 결제 화면이 떠서, 무엇이든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여러 번 당황스러워하고 상점이나 식당 주인에게 미안해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괜찮아!’하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나의 조급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급급해 하는 것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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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L 결제? 스마트폰 은행 앱으로 상점에서 보여주는 QR 코드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해외 결제 시스템. 원하는 금액만큼 충전해서 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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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왔지만 문을 연 징 자이 마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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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행인 만큼 첫 번째 여행에서 좋았던 것들은 복습하고, 아쉬웠던 것들을 채우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켓 즐기기. 조식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마켓에 들린 탓에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들을 보고도 그냥 돌아서야 했던 일과 '지나가다 보면 또 있겠지'하고 놓쳐버린 핸드메이드 옷은 5년이 지난 후에도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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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는 작정을 했다. 공복에 징자이 마켓에 들려 이것저것 사 먹었고, 선데이 마켓에서는 어떤 물건이든 핸드메이드로 만든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살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거잖아!’ 하며 합리화를 하고 보니, 평소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천연석 목걸이나 조카에게 선물할 핀 같은 것들로 어느덧 가방 안이 수북해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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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추천 마켓 1️⃣ 징 자이 마켓: 아침 6시 오픈, 다양한 현지 음식을 맛보기 좋다. 일요일이라면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러스틱 마켓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2️⃣ 선데이 마켓: 왓 프라싱과 타 페 게이트 사이에 들어서는 일요일 야시장. 대부분의 상점에서 QR결제를 할 수 있다.
3️⃣ 프라이나잇 마켓: 금요일마다 시품에서 열리는 작은 마켓. 규모는 작지만, 여행 일정에 주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추천한다. 인근의 란나 스퀘어를 함께 방문하기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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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Annie 선생님의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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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표를 만들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나름의 다짐은 있었다. 1일 1요가하기.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과 이색적인 공간,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패스까지 갖추고 있는 치앙마이는 발리 못지않게 요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도시다.
밤에 도착한 여행 첫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여러 요가원에 들러 1~2개의 수업에 참여했다. 평소 겁이 많은 나는 단계별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주어지면 비교적 안전한 것을 선택하고, 용기 내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하는데 그건 치앙마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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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날은 선데이 마켓에서 산 천연석 목걸이를 하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어째서인지 그날따라 난이도가 높은 동작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안될 것 만 같았던 동작을 완성시키고 나자 뿌듯함보다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덕분에 오늘의 저는 챌린저였어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요가원 앞에 있는 유리문에 반짝, 하고 무언가가 빛났다. 호랑이와도 같은 용맹함을 상징한다는 천연석, 호안석. 전날 선데이 마켓에서 산 목걸이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나를 도전하게 만드는 신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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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도 환영해주는 치앙마이 추천 요가원 1️⃣ Tha Phae Gate Yoga by Uspace: 본점이 따로 있는 Uspace에서 운영 중인 곳. 접근성이 좋다. (1회 300밧)
2️⃣ Freedom Yoga: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목조 건물 2층에서 수업이 이루어진다. (1회 350밧)
3️⃣ Wild Rose Yoga: 초보도 가능한 다양한 난이도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1회 350밧)
4️⃣ Yoga Rang Nok: 마스터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 가성비 뛰어나다. (1회 180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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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복합 공간, 캄 빌리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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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행지를 추리는 행복한 고민을 할 때마다 갈림길에 선다. 한 번 가본 도시는 일단 걸러야 할까. 그래도 언젠가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지금이 바야흐로 그 때가 아닐까.
결국 N번째 여행을 결심하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가보지 못한 넓고 넓은 미지의 세계를 두고, 소중한 여행의 기회를 낭비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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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시는 계속 변화하고, 나 또한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인생 맛집을 발견하고, 나만의 테마를 정해 도시의 새로운 단면을 발견해 보는 일. 과거 이곳에 있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달라진 나를 알아차리고, 조금은 다른 내일의 나를 상상하게 만드는 일. 이것만으로도 N번째 여행의 이유는 충분하다.
더 이상 고민하지 말길. 당신의 사진첩 속에서만 살고 있는 그리운 여행지를 다시 한번 만나보길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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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메이제이' 여행 중에만 용감해지는 '쫄보' 콘텐츠 기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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