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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길,
두 번의 비행기와 2박 3일 기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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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말이지만, 티베트 라싸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멀다” 를 두 번 반복하는 정도로는 모자랄 만큼 멀었다. 일단, 조건이 까다로웠다. 중국 관광 비자는 물론, 티베트는 특별구역이라 별도의 허가가 필요했는데, 꼼꼼히 준비해 여행 허가를 받더라도 자유여행은 불가능하고,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반드시 동행하는 조건으로만 티베트자치구역 내를 여행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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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고도 먼, 서울에서 라싸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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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거리도 멀었다. 서울에서 베이징北京을 거쳐 청두成都로, 청두에서 티베트의 중심도시인 라싸拉薩로. 베이징까지는 마냥 설렜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청두에 갔을 때도, 영화 ‘호우시절'의 무대가 된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쓰촨四川성의 상징인 판다공원에 갔을 때도 즐겁기만 했다. 청두역에서 칭짱 열차青藏鐵路의 침대칸에 탔을 때는 끝없는 지평선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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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웬걸, 곧 지겨워졌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바깥은 똑같았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를 지나가니 귀는 멍멍하고 머리는 띵한데, 다음날도 거짓말처럼 똑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땅이 이렇게 넓다니.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과 석산, 제멋대로 흐르는 얕은 강, 끝없는 지평선. ‘거대한 없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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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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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차여행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었했나. 50시간, 3,400km의 대이동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개념이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티베트 여행 이후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로망은 지웠다ㅠ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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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빵해진 빵 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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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해발 5,000미터 루트를 지나갈 때는 기압이 급속히 낮아졌다. 귀가 아픈 건 그렇다치고, 기차 타기 전에 산 과자와 빵 봉지는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중국인 아저씨는, 청두에서 풍선을 반만 불어 놔도 티베트에 가면 빵빵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컵라면을 먹을 때는 조리법 보다 훨씬 오래 익혀야 한다고도 가르쳐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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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에서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면 2시간 만에 라싸에 갈 수 있지만, 그런 여행객 대부분이 고산병에 시달려 산소통을 여행가방처럼 끌고 다닌다. 기차를 선택한 건 천천히 고원지대로 올라가야 고산병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2박3일의 기차여정은 고도에 조금씩 몸을 적응시키는 시간이기도 했다. 칭짱열차의 침대칸에 누우면, 얼굴 바로 옆 벽에 투명한 호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숨이 가빠지면 이 호스를 코에 꽂아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 나는 고산증세를 예방한다는 약을 사흘 전부터 미리 먹어서 그런지, 티베트 여행하는 내내 한번도 고산병으로 힘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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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시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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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는 모든 것이 선명한 곳이었다. 밤에는 비가 오고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았다. 하늘은 파랗지 않고 새파랬고, 꽃들은 빨갛지 않고 새빨갰다. TV광고에 나오는 고해상도 화면처럼 모든 것이 선명해서, 시력이 좋아졌나 착각마저 들었다. 과연 태양과 가장 가까운 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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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환생한다고 믿는 달라이 라마(현존하는 달라이 라마는 14번째 환생자)가 생활했던 포탈라 궁전은 눈부시게 하얀 벽으로도 유명하다. 이 벽은 1년에 한번 보수공사를 하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야크젖과 설탕등을 섞어 벽에 바른다. 이때가 되면 도시의 불교 신자들은 궁전에 우유와 설탕을 바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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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파리 VS 야크
생명의 크기는 무엇으로 잴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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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크는 이렇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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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티베트에서는 전통적으로 야크고기를 먹는다고 한다(블랙야크, 의 그 야크이다). 식당에도 야크 메뉴를 팔기에, 밥과 함께 나오는 스튜를 시켰다. 한참을 푹 끓여 나온 스튜인데도 얼마나 질긴지 잘 씹히지도 않고 냄새도 났다. 그동안 내가 먹은 부드러운 고기들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사육된 것이었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먹이가 되려고 태어나는 짐승이 어디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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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라싸 시내의 정육점에는 돼지, 닭, 양고기도 팔고 있었고, 서울시 크기의 3배나 되는 얌드록쵸 호수를 비롯, 거대한 호수가 여럿 있어서 물고기도 많이 산다고 했다. 하지만 신실한 불교신자인 가이드 아저씨는 야크 고기 이 외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왜 생선이나 다른 고기는 먹지 않고 야크를 먹나요? 야크를 키우려면 힘들고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닭을 키우면 계란도 먹을 수 있잖아요."라고 물었더니, 가이드 아저씨는 돼지나 닭, 양고기는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 온 한족들이 많이 먹는다고 알려주었다. 티베트의 원주민인 좡족들은 생선도 먹지 않고 오직 야크만을 먹는다고 했다.
“야크도 한 생명이고, 날파리도 한 생명이야. 야크 한 마리의 목숨이면 수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잖아. 하나의 생명을 희생하면 마을 전체가 배 부르다고. 물고기는 여러 마리를 먹어도 아이 한 명의 배도 차지 않아. 왜 우리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많은 영혼을 죽여야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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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르파에서 중요한 불교 행사가 있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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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연도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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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 다녀온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불교라면서 저렇게 큰 동물을 죽이다니, 라고 내심 생각했었다. 날파리의 생명은 작고 야크의 생명은 크다고, 동물의 영혼은 가볍고 인간의 영혼은 무겁다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최대한 생명을 덜 죽이기 위해서 야크를 먹는다고 하셨을 때, 난 이 말을 들으러 티베트에 왔구나, 라고 느꼈다. 뭐, 그렇다고 그 이후로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건 아니지만, 가끔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때, 잔멸치 볶음을 먹을 때, 무심결에 탁! 모기를 잡을 때마다 티베트의 가이드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모든 생명은 같은 정도로 크고 무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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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사원에서는 초 대신 야크 버터로 불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은 버터를 공양물로 올린다고 한다. 나쁜 버터는 그을음이 많이 나와 절 내부의 그림(탱화)를 망치기 때문에 좋은 버터여야 한다고. 어디서 가장 좋은 버터를 살 수 있을지 물었더니, 일반 가정에서 야크 젖으로 직접 만드는 게 제일 좋다고 하셔서, 가이드 아저씨의 친척인 유목민 아주머니를 소개받아 직접 만든 버터와 야크 치즈를 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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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계절마다 야크떼를 몰고 이동하면서 생활하시는데, 절에 바치기도 하고 가족들이 먹을 용도로 버터와 치즈를 조금씩 만드신다고 했다. 버터는 고소하고 치즈는 찐해서 정말 맛있었다. 가끔 야크털이 한 두 개씩 섞여있기도 했지만,,,, 불도 안 들어 오는 곳에서 어떻게 사시나 했는데, 아주머니의 텐트 앞에는 손바닥 두어 개만 한 태양광 패널이 있어 그걸로 전기를 충전하시는 것 같았다.
버터와 치즈값은 핸드폰으로 송금을 해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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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승려들이 수행하던 '예르파'의 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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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킹 사원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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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에서도, 동네 빵집이나 야식을 파는 트럭에서도, 모든 결제는 큐알코드로 이루어졌다. 하긴, 커피숍에 앉아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는 젊은이 옆으로, 조캉사원까지 오체투지를 하는 승려들의 무리가 지나가는 곳이 라싸이다. 온 몸을 땅에 붙였다 일어나 한발씩 전진하는 고행을 하며 몇 천 킬로미터를 걷는 사람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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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다리 빼고 모든 것을 다 먹는다는 한족과, 하나의 생명이라도 덜 죽이기 위해 야크만을 먹는 좡족이 함께 사는 곳. 티베트 불교의 중심인 조캉사원과 무슬림들이 모여 생활하는 모스크가 같이 있는 곳. 야크 유목민과 큐알코드, 오체투지 승려와 최신 아이폰이 공존하는 곳. 라싸는 세상의 어디와도 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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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라이링'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시차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직장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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