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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잔잔한 푸른 물결(그때는 그게 강물인지 바닷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위에 일자로 늘어선 목조 수상 가옥들, 그 위로 날아다니는 갈매기. 그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을 담은 한 장의 사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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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장소를 찾아보니 일본 교토부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어촌 마을, 이네노후나야.
참 다행이다.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가까운 나라, 일본이라서!
2년 전 나는 그렇게 오사카행 항공권을 끊고 교토로 향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best 3 안에 드는 교토의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단 번에 매료된 사진 속 어촌마을에도 갈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의 여행이다,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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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노후나야는 교토부에 속해 있지만, 교토 시내와 가깝지는 않다. 교토 역에서 출발한 뒤 무려 편도 3시간 30분(이것도 기차와 버스 환승을 제시간에 했다는 조건 하에)이나 걸리는, 꽤 먼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왕복 시간만 무려 7~8시간.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무조건 첫 기차를 타야 어느 정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기차표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가급적이면 간사이 와이드패스 5일권을 준비한 뒤 그중 하루를 이네노후나야 왕복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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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조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차가운 아침 이슬을 맞으며 교토 역으로 가서 7시 32분 첫 차에 몸을 싣고 떠났다.
기차를 타고난 이후에도 기차를 제대로 탄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도 하며 왠지 정신이 없었는데, 교토 시내를 벗어나 시골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지며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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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치야마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한참을 더 달린 뒤에야 아마노 하시다테에 내려, 이네노후나야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교토역에서부터 무려 3시간 30분.
드디어 사진에서 본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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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그 위로 길게 늘어선 수상 가옥들. 이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고생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네노후나야는 사실 정확한 지역 명칭은 아니다. '이네(伊根)’가 지역명이고 ‘후나야(舟屋)’는 배 차고를 뜻한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이네 지역에 있는 배의 차고’ 정도가 되겠다.
어찌 보면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다와 배의 차고일 뿐인데, 가지런한 목조 건물들이 푸른 바다 위에 일자로 쭉 늘어선 풍경이 내게는 일반 어촌과는 또 다른 특별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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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직 해외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작은 마을이 관광객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하면, 지금 느끼는 이 감흥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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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고 한적하게 마을 산책을 즐기고 있을 때.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그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을 열심히 찾았지만 때 묻지 않은 작은 어촌에서 그런 곳을 찾기란 어려웠다. 유일한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열심히 뛰어가 보니 카페 입구에는 한자로 쓰인 빨간 글자가 놀리듯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정기 휴무'
예상대로 비는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비를 피할 곳이라곤 관광안내소 밖에 없었다. 비는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큰맘 먹고 달려온 이곳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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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 마을의 맑은 공기가 아직 온몸에 퍼지기도 전인데.
카메라 메모리카드에 남은 사진이 10장도 채 되지 않았는데.
교토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 내 마음에는 허탈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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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만난 마을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그새 이곳의 명성이 알려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전히 한적하고 조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까지 나의 재방문을 반겨주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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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네 마을. 오랜만에 찾은 기억 속 장소가 세월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어쩜 이렇게 물도 맑은지.
투명한 바다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만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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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정기휴무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던 카페도 다시 찾았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그래봐야 몇 안 되는) 핫플레이스, INE CAFE. 2년 전과 입구의 모습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았지만, 정기휴무로 들르지 못한 곳에 다시 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따뜻한 차와 당고를 주문하고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이네의 눈부신 햇살을 마음껏 받으며 차를 즐기다 보니, 다시 이곳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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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행복을 누린 뒤 다시 마을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한 5분쯤 걷다 보니 카페가 하나 더 보인다. 이곳의 간판에도 INE CAFE라고 쓰여 있다.
‘그럼 내가 다녀온 카페는 뭐지?’
궁금증에 다시 돌아가서 보니, 좀 전에 들른 곳은 2년 사이 새로 생긴 동명의 다른 카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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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의 해골물'이 이런 느낌일까. 지난번에 들르지 못한 카페라고 생각한 곳에서 1시간의 행복을 누렸건만 알고 보니 다른 곳이었다니.
허탈함에 실소가 흘러나왔지만 아무렴 어때. 즐거웠으면 된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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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른 카페가 작은 개인 카페의 느낌이라면, 진짜 INE CAFE는 대형 프랜차이즈 느낌이었다. 내가 주문한 맥주 같은 주류를 포함해 온갖 식사 메뉴도 구비되어 있었고, 심지어 넓은 테라스 석도 있었다.
주문한 맥주를 손에 들고 테라스로 나가 이번에는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또다시 1시간의 행복을 누리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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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다는 말보다 지금의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해 주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따사로운 햇볕과 푸른 바다, 시원한 바람. 맥주의 취기 덕분인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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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해 질 무렵까지 멍하니 있고 싶었지만, 교토로 돌아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기에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시간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하지 못한 내 자신을 잠시 책망했지만 이제 와 어쩔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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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환승지인 아마노하시다테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네 마을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시계를 보고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직 1시간 정도의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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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버스 벨을 누르고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에 즉흥적으로 내렸다. 바닷가 마을인 이네 마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지만, 내가 상상하던 일본 소도시의 작은 마을 느낌이 물씬 풍겼다.
관광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을을 걷는 느낌은 묘하고 신선했다.
그렇게 새소리만 들리는 이 작은 동네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자전거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외지인이라곤 전혀 찾지 않을 것 같은 마을에 찾아온 외국인. 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 몰리더니 순식간에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인 처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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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나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 영어로 간신히 내가 한국인임을 알렸더니 이제는 아이들이 엄마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K 드라마로 한국을 좋아하게 되어 한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엄마도 있었다.
10여 분간 즐긴 우리의 위 아더 월드. 해맑은 아이들 덕에 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순수해지는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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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과 방법, 추구하는 이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시 찾은 이네 마을은 내가 평소에 그리던 여행 그 자체였다.
한적하고 예쁜 마을을 방문하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멍하니 앉아 맥주 한잔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곳에 가서 이방인이 되어 현지인과 소통하는 일.
이네 마을을 또 방문하게 되는 날이 내 평생 다시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런 날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그곳에서 이미 충분한 추억과 행복을 얻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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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카르페디엠'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직장인. 내가 바라보는 현재를 더욱 아름답게 남겨놓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유랑하며 나의 발자국을 기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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