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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하고 난 뒤 한 달이라는 여유 시간이 내게 덜컥 주어졌다. 여행을 가기에 적기란 생각에 처음엔 비교적 가까운 치앙마이나 일본을 다녀올까 생각했다. 그러다 4년 전 혼자 떠난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놀라운 작품들을 보며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반드시 오른손은 엄마 손을 잡고 왼손은 아빠 손을 잡고 이곳에 다시 와야지. 그리고 내가 본 이 아름다운 것들을 엄마 아빠에게도 꼭 보여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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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에게 파리에 가자고 했다. 기왕 가는 거 2주 정도는 가서 실컷 여행하고 오자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있겠어..라는 마음은 나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도 똑같이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일주일만에 부랴부랴 준비하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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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숙소를 고를 때 무엇보다 치안이 가장 중요했다. 숙소는 파리의 가장 중심지에 위치하고 안전한 1~5구에서 골라야 했고 최종적으로 걸어다니며 볼거리가 많은 마레지구로 선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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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지구는 아빠의 관심사인 갤러리와 미술관, 엄마의 관심사인 편집샵이 모두 모여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2주라는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모든 날을 모두가 다 함께 소화하기보다는 엄마 위주로, 아빠 위주로 보내는 날들을 따로 정해서 다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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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취향 🙎🏻♀️ [마레지구 근방에 있는 브랜드]
편집샵 메르시(Merci), 인테리어 및 소품샵 Fluex, 슈프림, 스투시, Rouge, APC, 시타디움, 산드로,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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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취향 🙍🏻♂️ [마레지구 근방에 있는 미술관 및 서점]
퐁피두센터, 유럽미술사진관, 피카소 미술관, 이봉랑베르 서점, Ofr,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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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의 리모델링으로
미술관이 된 증권거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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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예술가들의 성지답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이 자리하고 있는 도시다.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루브르 박물관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장 중인 오르세 미술관, 모네가 자신의 수련 연작을 전시하기 위해 건축까지 설계한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쟁쟁한 미술관이 서울의 1/6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모여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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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몇 년 전 파리에 여행했을 당시에는 없었던 요즈음 가장 많이 간다는 현대 미술관이 있어 엄마 아빠와 여행의 첫 일정으로 선택했다. 회화부터 건축, 설치미술, AI와 접목한 작품까지 과연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술관답게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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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을 마치고 굿즈샵으로 내려오면 파리에서 라따뚜이 다음으로 유명한 쥐를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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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숙소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일 경우엔 튈르리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쉬어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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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중심지에 위치한 튈르리 공원은 넓은 면적과 탁 트인 경관으로 파리 시민들을 위한 최적의 쉼터가 되어준다. 이는 끊임없이 걸어 다니느라 고생한 다리를 뉠 곳이 필요한 여행객에게도 마찬가지다.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파리엔 튈르리 공원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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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 혹시 몰라 언제나 가방에 돗자리를 들고 다니는 편인데 파리는 돗자리를 펴기에 좋은 장소들이 곳곳에 있다. (물론 진정한 파리지앵은 돗자리 따위 없이 아무 곳에서 벌러덩 누워버린다! 파리엔 쯔쯔가무시가 없나보다) 그치만 돗자리가 없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튈르리 공원 곳곳에는 초록색 의자가 여기저기 놓여있어 누구나 빈 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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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2시간씩 한다고 한다. 그에 반해 우리 아빠는 10분이면 식사를 마치고 밥을 다 먹으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격 급한 K-아저씨지만 이왕이면 파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 부모님과 풀코스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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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테이블을 담당해 주시는 서버의 안내를 받아 메뉴판을 건네받고 나는 에피타이저로는 양파스프, 본식으로는 부르기뇽, 마지막으로 디저트로는 복숭아 타르트를 먹었다. 부르기뇽은 레드와인에 소고기를 24시간 넘게 푹 끓여 먹는 프랑스 전통 음식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월계수 잎이 들어가지만, 향신료 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다행히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도 거부감없이 드실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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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이름은 Au Bourguignon du Marais, 가게의 이름에 부르기뇽이 들어갈 정도로 부르기뇽에 자신 있는 곳이었고 그만큼 맛도, 서비스도 훌륭했다. 우리는 거의 2시간 가까이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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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고백하건데..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우리 가족이 길게 가족여행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17년을 함께 한 우리 집 막내 어르신 때문인데,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어르신을 어디에 맡기고 길게 여행을 가는 건 우리 가족에겐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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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올해 2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너무 오래 아파하지 않고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떠나 보내려면서도 사실 난 (나 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 모두)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도, 센느강의 크루즈에 앉아서도, 튈르리 공원에 누워서도 우리집 막내를 생각했다. 우리가 여기에 왔네.. 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쳐다봤을 때, 엄마도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 도중 자주 눈시울이 붉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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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어서 우리가 이렇게 멀리 여행 올 수 있었네-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했다. 하지만 파리의 어느 한 카페에 앉아서 행복하다고 말하며 활짝 웃던 엄마의 모습과 퐁피두센터를 둘러보며 너무 잘왔다.. 고 조용히 속삭이던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네가 우리를 여기에 보내준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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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분이 프랑스식 안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Au revoir와 다신 볼 일이 없는 상대에게 하는 Adieu이다. 마음 한켠에 떠난 너를 여행 내내 생각하며, 우리 가족은 무사히 파리를 다녀왔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꼭 튈르리 공원에서 너와 엄마와 아빠 모두와 같이 뛰어놀 거야.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Au revo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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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루나'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싶은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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