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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내게 첫 유럽, 첫 경유, 처음으로 혼자 간 여행지였다. 그나마 유럽 중 가장 다니기 쉽다고 해서 고른 여행지였는데, 인터넷에는 코로나 19 이후로 동유럽의 분위기가 이전 같지 않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선물일랑 됐으니 무사히만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걱정은 내 특기였다. 나는 복대부터 지갑과 가방을 연결할 등산용 카라비너, 체코어 회화 사전까지 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준비할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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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공항에 도착할 즈음에는 안도했다. 두바이 공항에서 무사히 경유했고, 프라하 시내 호텔로 가는 픽업 차량도 단번에 찾았다. 날도 쾌청했다. 픽업 차량 기사는 이제 엉덩이가 좀 아플 거라는 농담을 던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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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프라하로 진입한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온통 돌길이었다. 기사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내 엉덩이는 춤추듯 들썩거렸다. 나는 이대로 춤추듯이 여행이 시작될 줄로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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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내가 기사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동안, 한 중년 남자가 캐리어에 올려놓은 가방을 낚아채 갔다. 가방에는 여행에서 읽으려고 고른 책과 스마트폰 충전기가 들어 있었다. 차도에 비해 인도의 돌길은 고른 편이나 무작정 달리다가는 넘어질 확률이 높았다. 다행히도 기사가 그 남자를 잡아서 다그쳤다. 남자는 사과하기는커녕 장난이었다며 성을 냈다. 기사는 남자에게 나 대신 체코어로 몇 마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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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직원은 기사의 설명을 듣고는 내게 위로 겸 차 한 잔을 건넸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객실로 올라왔다. 예약해 둔 야경 투어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나는 영락없는 이방인이었다. 한국과 달리 모든 면에서 서툴렀고, 만만했다. 하지만 여행 내내 계속 객실에 처박혀 있을 순 없었다. 게다가 너무 배고팠다. 나는 결국 나갈 채비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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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셨고,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다리도 휘청거렸다. 미리 찾아봤던 레스토랑과 카페까지 찾아갈 여력은 없었다. 걷고 걸어 내가 간신히 다다른 곳은 알프레도 카페였다. 알프레도 카페의 홀 오른편에는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왼편에는 가볍게 식사할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레스토랑의 경우 자리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카페와 달리 예약 손님이 대부분이라 웨이터의 안내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 난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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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웨이터를 붙잡고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다. 웨이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다면 어디든 앉아. 그러고는 영어 메뉴판을 내주었다. 그 사소한 친절에 감동하기도 전에 나는 메뉴판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금액 표기법이 너무 낯설었다. 어쩌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터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민하던 나는 구글 리뷰에서 추천한 오믈렛과 핫 초콜릿을 주문했다. 그 무더운 날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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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웨이터는 내게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유럽에서는 물도 돈을 내고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데다 따로 물을 주문하지 않았던 터라 나는 조금 당황했다. 서비스, 웨이터는 그렇게 말하고선 휙 가버렸다. 덕분에 오믈렛 한 접시를 싹 비울 수 있었다. 핫초코에 진한 생크림을 잔뜩 얹어 마실 즈음에는 창 너머로 프라하 시내를 구경할 여유도 생겼다. 나는 결심했다. 저 친절한 웨이터에게 꼭 팁을 주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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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웨이터는 넌지시 팁 이야기를 꺼내거나 카드 단말기를 내밀면서 금액을 입력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영수증을 준 다음 결제할 카드를 달라고만 했다. 내가 먼저 팁 이야기를 꺼내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카드로는 팁을 받지 않으니 현금이 있다면 주고, 아니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맛있었는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웨이터는 그제야 웃어 보였다. 굿, 그 짧은 한 마디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친절이라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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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투어의 시작은 루돌피눔이었다. 루돌피눔은 당시 황태자였던 루돌프의 이름을 붙인 공연장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루돌프는 왕위에 오르기 전 애인과 동반자살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런 비극에도 노을 아래 루돌피눔은 아름다웠다. 가이드는 건물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동상 중 체코 출신 음악가는 없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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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루돌피눔 바로 앞에 체코의 국민 음악가라 불리는 드보르작의 동상이 마주하고 있었다. 보통 동상들은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건물을 등진 채 그 위세를 등에 업은 양 자신만만한 자세를 취하기 마련인데, 드보르작 동상은 달랐다. 한 손으로는 옷을 여미고 다른 손에는 악보 뭉치 같은 걸 쥔 채 루돌피눔과 마주 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루돌피눔으로 성큼성큼 들어갈 태세였다. 제 머리 위에 있는 유명 음악가들의 동상에 주눅들 시간조차 없다는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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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달리 프라하는 백 년 이상 된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허름하거나 시대에 뒤처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물길에 씻겨 반들반들한 자갈처럼 꾸준히 관리한 태가 났다. 의외라면 거의 모든 벽이 그래피티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었다.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그 저항을 꾸준히 표현해 온 역사 역시 건물만큼 소중하다는 걸까. 그마저도 프라하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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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걸어 레트나 공원 광장에 다다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거대한 시침이 보였다. 가이드는 세상에서 제일 큰 메트로놈이라고 했다. 메트로놈은 일정한 속도로 양쪽을 오가면서 박자를 맞추도록 도와주므로 결국 같은 궤도를 맴돌 수밖에 없다. 스탈린 동상 대신 메트로놈을 놓다니. 방심하는 순간 언제든 메트로놈의 침처럼 같은 역사의 궤도에 머무를 수 있으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멈췄지만, 예전에는 움직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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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교에 들어설 즈음 나는 왜 사람들이 프라하의 야경을 극찬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해 지는 시각이 늦은 만큼 어둠마저도 천천히 드리웠다. 짙고 푸른 어둠 사이로 노란 가스등이 일제히 켜졌다. 마치 거리 전체가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돌길마저 다채로운 색으로 빛났고, 도로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취객도 그림 속 인물처럼 흥미롭게 보였다. 눈이 닿는 곳마다 감탄하기 바빴다. 가이드는 얼른 가자며 재촉했다. 진짜를 봐야한다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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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뭘까? 카를교 끝에 그 답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의 손가락이 향하는 쪽을 따라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금빛으로 반짝이는 프라하성이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기 수급이 줄어드는 바람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조명이 꺼진다고 했다. 여러분은 정말 운이 좋네요! 가이드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웃었다. 내일의 프라하가 기다려졌다. 정말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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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 '정은우' 낯선 곳으로 떠나 보고 듣고 맛보면서 사랑할 것들을 찾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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