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선녀가 되는 곳, 교토 오하라 🍵
by. 마유라
LETTER. 57
교토에서 온 편지
17.OCT.2024

P과 극P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

여행의 시작은 딤섬이었다. 친구와 딤섬을 먹다가 일본 여행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날 저녁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여행지는 교토. 어디에 베이스캠프를 두면 좋을까 고민하다, 액자 정원이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마치 정령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롭고 인상적인 풍경. 액자 정원에 마음을 빼앗긴 우리는 그렇게 오하라 마을로 향했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은 오하라 마을의 액자 정원


오하라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P들의 여행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여권 만료일을 깜빡한 친구가 긴급 여권을 받고서야 오사카행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 역으로 향하는 하루카 특급열차를 한국에서 미리 구매해두었는데 여기서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긴급 여권으로는 발권기 이용 불가. 결국 티켓 창구에서 교환을 받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교토 역까지 가는 하루카 열차 탑승

간사이 공항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 도착한 교토. 우리의 목적지인 오하라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교토 역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더 이동해야 했다.
🚌 교토에서 오하라 마을 가는 방법
가와라마치 역 3B번 출구 앞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종착점까지 이동

오하라 마을과의 첫 만남

17번 버스의 종점. 어둠이 내린 오하라 마을 정류장

오하라 마을의 첫인상은 ‘시골'이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저녁 7시가 좀 넘었었는데 마을에는 어둠이 일찍 찾아와 있었다. 지도를 열어보니 숙소까지는 걸어서 13분. 8시까지 도착해야 숙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길을 나서보았지만, 가로등도 드문드문한 시골길을 걷다 보니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누군가 캐리어를 드르륵드르륵 끌며 어두운 비포장도로를 걷는 우리를 보았다면, 사뭇 비장한 기운마저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숙소에 미리 연락을 했다면 정류장으로 픽업을 와줬을 것이다 😅)

대박 료칸! 오하라 노 사토 온센

드디어 도착한 '오하라 노 사토 온센'

후덥지근한 날씨에 캐리어를 끌고 비포장도로를 걷다 보니 13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료칸이 눈앞에 나타나자 안도와 반가움이 몰려왔다. 숙소는 한 마디로 너무나도 일본스러웠다. 정원을 끼고 있는 디귿자형으로 이뤄져 있어, 방으로 향하면서도 언뜻언뜻 정원을 볼 수 있었고 어둑한 밤인데도 분위기가 대단했다. 마침내 방 문이 열린 순간. 정면으로 펼쳐져 있는 정원 뷰를 보고 우리는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대박! 대박!”을 외쳤다.

고백하자면 호센인의 액자 정원에 마음을 빼앗겨 오하라 마을 여행을 결심했건만, 정작 호센인은 방문하지 않았다. 방 안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녹차를 마시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녹차는 방 안에도, 식당에도 준비되어 있었다.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식사


료칸의 저녁 메뉴는 미소 샤브샤브. 넓은 뚝배기에 담긴 미소 육수와 신선한 버섯, 야채, 닭고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셀프바에는 멸치볶음과 낫또처럼 가정식 느낌에 감칠맛까지 좋은 밑반찬도 있었다. 사실 오래된 료칸이라 방 컨디션만 보자면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이 맛있는 음식 덕분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하라 노 사토 온센은 다른 료칸에 비해 가격이 꽤 저렴한 편인데 우리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소 육수가 아주 진하고 맛있었던 미소 샤브샤브
양념을 얹었을 뿐인데 삶은 무가 매우 맛있었다.

누구나 선녀가 되는 곳


이곳의 노천탕은 산 바로 아래 있는 큰 가마솥이다. 선녀탕이라고 불리는 탕 안에 들어가면 누구나 선녀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고개를 들면 단풍나무 잎이 드리워져 있고, 그 사이로 청명한 하늘이 드러난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숙소 입구에 놓여있는 노천탕 사진


우리가 머문 날엔 아쉽게도 달을 볼 수 없없는데, 보름달이 밝은 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고요한 숲속에서 노천을 즐겼다. 숙소 주인이 말하길 단풍이 든 11월쯤 최고의 노천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산책의 즐거움

오하라 마을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 마을을 둘러볼 겸 동네를 목적 없이 걸었다. 날이 밝으니 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보였고, 구간마다 풀냄새, 흙냄새, 백합 향기 등 다른 냄새가 났다. 길가에 핀 작은 꽃과 버섯도, 우리나라 것과는 생김새가 다른 소나무와 무궁화도 봤다. 걷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 공원도 나타났는데 우레탄이 아닌 잔디 바닥의 공원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신이 난 우리는 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타고 철봉에 매달려 동네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놀았다.

자유를 느끼는 오하라 마을에서의 행복


오하라 마을을 여행한다면 기왕이면 금/토/일요일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미리 알아보지 않고 여행을 결정해 월요일과 화요일에 머물렀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사실 우리에겐 꼭 가야 할 관광 지도, 맛집 리스트도 없었고 그래서 더 자유롭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순간순간을 즐기고, 여유로운 시간 안에 머물며 느끼는 행복. 오하라 마을에서 느낀 이 작은 행복은 복잡한 교토 시내에서도, 서울의 중심에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 여행자 '마유라'
지금의 행복과 평안함에 머물고자 하는 요기니이자 하타요가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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