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VS 호화 끝판왕, 극과 극 싱가포르 🇸🇬
LETTER. 62
싱가포르에서 온 편지
26.DEC.2024

컬러풀 시티, 싱가포르의 매력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이지만, 그 작은 나라 안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홍등이 빛나는 차이나타운을 거닐다가 MRT를 타고 몇 정거장 지나면 화려한 힌두 장식의 리틀 인디아로 넘어갈 수 있고, 또 걷다 보면 황금빛 모스크가 빛나는 아랍 스트리트에 다다르게 된다. 이 작은 나라에서 마치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 같은 싱가포르의 문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음식이다.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싱가포르 여행의 매력 중 하나. 오랜만에 다시 싱가포르를 찾아, 이번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짧고 굵게! 하루짜리 부루마불을 즐기듯 이곳저곳을 오가며 먹고 마시며 즐겨보기로 했다.


아침은 역시 카야 토스트

싱가포르의 아침 식사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침식사는 역시 카야 토스트다. 부실해보일 정도로 얇은 토스트, 대충 잘라 넣은 버터, 그리고 카야 잼이 레시피의 전부인데도 일단 맛을 보면 자꾸만 생각나는 마성의 맛이다.
카야 토스트와 함께 즐겨야하는 것은 커피가 아닌 코피(kopi). 싱가포르의 코피는 고열에서 로스팅한 로부스타(Robusta) 커피 원두로 만드는데 원두가 캐러멜화되어 독특한 풍미가 느껴진다. 여기에 설탕을 넣느냐, 연유를 넣느냐, 적게 넣느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그 이름들이 마치 화학 기호처럼 재미있다. 나의 선택은 늘 설탕을 넣은 블랙 커피 Kopi-0(코피-0)다.
보통 코피티암(Kopitiam)이라고 부르는 가게에서 카야 토스트, 커피, 달걀까지 세트 메뉴로 묶어서 팔기도 한다. 흘러내릴 정도로만 살짝 삶은 반숙란 2개를 곁들이는데 간장과 백후추를 살짝 더해서 먹으면 완벽한 싱가포르 스타일의 아침이 완성된다.

차이나타운 산책

싱가포르 스타일 아침을 즐겼으니 이제 차이나타운을 걸어본다. 주렁주렁 달린 홍등과 이색적인 건축물들이 골목 골목 이어진다. 오래된 건물들은 허물지 않고 보존하면서 외관은 컬러풀한 색감을 더해 마치 인형의 집처럼 예뻐 자꾸만 셔터를 누르게 된다.

걷다보면 석가모니의 치아가 모셔져 있다는 불아사가 나오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교 사원인 스리마리암만 사원이 나타난다. 몇 발자국 차이로 다른 종교와 문화의 경계를 오갈 수 있다는 점은 싱가포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쉐린 한 그릇

내가 차이나타운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집, 정확히는 '저렴한 맛집'이 많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싱가포르의 물가는 꽤 높아, 메뉴판을 볼 때마다 적잖게 놀라게 되는데 걱정할 필요 없이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차이나타운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이 여행자에게는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오늘 점심 메뉴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쉐린 식당’으로도 알려진 ‘랴오 판 호커 찬’이다. 이곳은 '찐 로컬 호커센터'로 유명한 차이나타운 콤플렉스 안에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다. 다닥다닥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호커 노점을 몇 바퀴 돌고서야 드디어 찾은 가게.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 보여 가게 앞에 줄을 서니, 현지인이 어깨를 두드리며 줄은 저 뒤에 있다고 가리킨다. 워낙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뒤에서 줄을 서고 있었던 것. 그럼 그렇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받아본 S$3.50 치킨라이스의 맛은 황송할 정도로 훌륭했다. 비싼 나라 싱가포르에서 이 가격에 이렇게 맛있는 치킨라이스라니! 냉방도 없고 허름한 호커 센터지만, 모든 것이 용서되는 맛과 가격이었다.


쇼핑몰 천국, 오차드 로드

배를 든든하게 채운 다음 목적지는 오차드 로드다. 경쟁하듯 모여 있는 쇼핑몰 중에서 한두 곳만 둘러봐도 짧고 굵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쇼핑몰 안에 알짜 맛집들도 많아, 식사와 쇼핑을 한 번에 해결하기에도 좋다.
배는 두둑하지만 그래도 커피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는 법! 싱가포르에서 가장 핫한 카페로 통하는 바샤 커피로 향했다. 바샤 커피의 브랜드 로고에는 '1910 Marrakech'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10년에 설립된 것도 아니고, 마라케시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마케팅의 일환일뿐. 이 전략적인 마케팅은 바샤커피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고, 웨이팅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호화로운 내부로 입장하는 순간 마치 귀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카페인과 당을 충전할 수 있다. 상품들은 또 얼마나 예쁜지! 여심을 제대로 저격하는 패키지 디자인과 구성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열게 만든다.


컬러풀한 동네, 아랍 스트리트

다음 목적지는 황금빛 모스크가 빛나는 아랍 스트리트. 술탄 모스크가 자리한 캄퐁 글램은 싱가포르에서 아랍 문화를 가장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동네다. 이슬람 색이 짙은 거리에는 화려한 카페트 상점들은 물론, 트렌디한 카페와 바가 골목골목 숨어 있어 보물찾기 하는 기분도 만끽할 수 있다.
포토제닉한 거리를 좋아한다면, 하지 레인도 빼놓을 수 없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하지 레인은 그 사이 더 힙해지고,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싱가포르 속 작은 인도

아랍 스트리트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싱가포르 속 작은 인도에 도착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도르나 히잡을 쓴 여인들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인도 전통의상 사리를 입고 헤나를 한 여인들이 리틀 인디아 거리를 가득 채운다. 거리 곳곳에는 신에게 바치는 화려한 꽃과 블링블링 금붙이를 파는 금은방들이 보이고, 이국적인 커리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여기가 인도인지 싱가포르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리틀 인디아를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무스타파 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가장 저렴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언제가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세련된 아이템은 없지만, 여행 기념품으로 사기 좋은 카야 잼이나 초콜릿, 라면, 과자 등의 먹거리가 많다. 워낙 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옆 사람들과 무언의 경쟁하듯 쇼핑에 임해야 하지만, 확실히 저렴하고 없는 게 없는 곳이라 놓칠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일본 여행자들이 앞다퉈 우르르 쓸어 담는 사탕을 따라 사봤는데 새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완전 취향 저격이었다. 가끔 뭘 사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역시 커닝이 답이지 싶다.


피날레는 마리나 베이 샌즈

마지막 코스는 역시 마리나 베이 샌즈다. 꽤나 오래된 랜드마크이지만 볼때마다 느껴지는 웅장한 포스가 엄청나다. 싱가포르를 찾을 때마다 마리나 베이 샌즈를 찾는 이유는 돈을 써도, 안 써도 좋은 곳이기 때문. 이 엄청난 건축물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호텔이지만 꼭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쇼핑부터 맛집, 카페, 전망대와 실내 운하를 오가는 곤돌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분수쇼까지 있어 존재자체만로도 테마파크를 방불케 한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는 카지노도 있는데 문득 카지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롭게 입장은 했는데 문제는 게임의 룰조차 모른다는 것. 약 1시간가량 다른 사람이 하는 게임을 염탐하면서 룰을 대충 터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게임에서 1분, 아니 30초 만에 100달러를 잃었다. 단 한 번의 게임으로 날아간 100달러가 아까웠지만, 생애 첫 카지노를 경험했다는 추억의 값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극과 극의 경험이 주는 즐거움

돈을 잃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는 미쉐린 별을 자랑하는 스타 셰프들의 레스토랑도 모여 있다. 하루의 마지막 만큼은 호사스럽게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57층으로 향했다.
스타셰프 울프강 퍽의 '스파고 다이닝 룸'은 57층에서 멋진 뷰를 즐기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화려한 야경과 호사스러운 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는데 낮에 먹은 S$3.50 짜리 치킨라이스가 떠올랐다. 에어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던 점심과 잔이 빌세라 채워주는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먹는 이 고급진 디너의 간극이 주는 짜릿함이 있었다. 이렇게 극과 극의 경험을 경계 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싱가포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싱가포르의 멋진 하루를 마무리했다.
🧳 여행자 '릴리'
주로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책을 쓰는 N년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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